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가흥리 산17-1번지 지리산 북쪽 자락에 위치한
금대암은 신라 태종 무열왕3년(656년)에 행호조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 말사로서, '금대사'라고도 부른다.
또한 금대암은 1950년 6,25 전쟁때 소실된 후, 금대암 복구 기성회가 조직되어 중건되었다고 한다.
금대암은 해발 800m가 넘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예로부터 금대암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풍경을 최고로 꼽았다고 한다.
위의 찍은 사진과 이 사진을 비교하면서 바라보면, 위의 지리산 풍경이 더욱 멋스럽다.
수령500년이 넘는 전나무(경상남도 기념물제212호)
금대암에 있는 500년된 전나무는 우리나라 전나무 중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금대암은 신라 도선국사가 참배지로 인정했으며
고려 보조국사와 서산대사가 수도 성취했다는 구전이 전해오고 있다.
금대암 '금대선원'
하늘 아래 우뚝 서있는 멋스런 나무가 지리산 천왕봉 보다 더 높은 것 같다.
금대암 무량수전
무량수전
무량수전의 꽃문살
새나 다람쥐가 들어가니 문을 꼭 닫아 달라는 글귀가 정겹다.
금대암 동종(문화재 자료 제 268호)
신중 탱화(문화재 자료 제269호)
금대암 나한전
신라 도선국사가 나한전을 지었으며, 그후 나한전을 중창한 뒤
금대암이 나한도량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꿀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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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겅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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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대암 삼층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4호)
이 탑은 일반적인 석탑에서 볼 수 있는 받침대가 없고, 바윗돌 위에다
바로 1층의 몸체를 세운 특수한 양식의 석탑이다.
이 탑은 금대암 창건 당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조각, 수법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 말기 혹은 고려시대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1489년 김일손이 이곳을 여하고 남긴 기행문에 따르면
당시 이 절에는 20여명의 승려가 수행정진하였다고 한다.
1598년 정유재란 때 왜구 500여명이 몰려와 이곳에 있던 사람은 모두 죽임을 당하였고
그 이후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6,25 전쟁 후 폐사된 것을 금대암복구기성회가 중건하였다고 한다.
금대암에는 금대선원과 나한전, 무량수전, 그리고 3층석탑이 있으며
500여년 된 기념물 제212호 전나무가 있다.
금대암으로 가는 산길에서 만난 '까투리 모녀'
길을 비켜주지 않아서 한동안 눈치 보면서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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