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소재한 '경주 최씨 종가'는
임진왜란 때에 대구 의병장으로서 왜적을 격파하고, 많은 전공을 세워 공신이 된 태동공 최계선생의 아들이며
효종임금의 잠저시 사부인 대암 최동집 선생이
장래 자손의 세거지(世居地)로서 1616년에 정착한 이래 380여년간을 계속 이어 오고 있는 곳이다.
경주 최씨 칠계파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집성촌으로 현재 이 마을에는 20여 호의 고택들이 어우러져 있다.
시냇가에는 옻나무가 많이 있었으므로
칠계(漆溪:옻골)라 부르게 되어 지금 까지 자손들이 대대로 살고 있다.
최흥원 정려각(대구 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 40호)
조선 정조 임금 때 세자의 익찬(翊贊; 임금의 정사를 잘 도와서 인도함)이었던 백불암 최홍원 선생의
효자비각으로 선생의 생존시 효성을 기려 선생의 사후인 1789년 나라에서 세운 정려각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것 처럼 보이는 고즈넉한 고택들이지만 ,담장 너머 꽃밭에는 예쁜 꽃들이 피었고
텃밭에는 각종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다.
왕고들빼기
토담 안의 은행나무에는 너무 많은 은행들이 빽빽하게 달려 있었다.
고풍스런 집들의 토담이 마주 보이는 골목길을 걸어보는 것도 평온함 그 자체였다.
수구당 사랑채(대구광역시문화재 자료 제41호)
이 건물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동신서원이 훼철 되었을 때 나온 목재의 일부를
사용해 1866년에 중건된 유서 깊은 건물이다.
옥잠화의 향기가 그윽하다.
보본당
대구 광역시 문화재인 이 건물은 백불암 최흥원 선생의 오대조이신 대암 선생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1753년(조선 영조 29년)에 건립하였으며, 부조위 사당과 재실, 음식을 장만하는 포사로 구성 되었다.
옥잠화꽃 앞으로 '천궁꽃'이 피었다.
길고 긴 돌담길을 걸으며 350년이 훨씬 넘은 세월을 생각해보았다.
경축일이 아닌데, 경주 최씨 종가의 대문 앞에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백불고택 최씨 종가
옻골마을의 제일 안쪽에는 조선 영조 때의 학자 '백불암 최흥원 선생의 종택이 있다.
조선 인조 때 대암 최동집 선생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지은 경주 최씨 종가는
대구 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보본당으로 들어가는 문
안채로 들어가는 문
앙증맞고 귀여운 모습으로 커가고 있는 호박
옻골마을을 한바퀴 돌아보면서 이곳에서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한명도 볼 수 없었다.
아무도 살지 않은 민속촌 마을을 연상케 했는데, 고택의 아름다움은 사람들의 손길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을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골목마다 느낄 수 있었던 푸근함이었다.
'고택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주 무섬 전통마을 (0) | 2012.11.11 |
---|---|
개실마을(경북 고령) (0) | 2012.03.05 |
평사리의 최참판댁에서 (0) | 2011.07.01 |
낙안읍성의 아름다운 길 (0) | 2011.06.06 |
낙안읍성 민속마을 (순천) (0) | 2011.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