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당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 산내암자이며, '해인사 1번지' 같은 상징적인 암자이다.
또, 원당암은 해인사 최초로 가람으로 1200여년간 국가의 소원을 비는 원찰(願刹)의 역활을 해왔다고 한다.
해인사 일주문에서 왼쪽의 산길로 들어서면, 홍제암과 원당암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시원한 냇물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귀를 귀울이며, 원당암 이정표를 따라서 암자로 오르면 된다.
아마도 해인사 산내암자 중에서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암자인 것 같다.
호젓한 숲길을 따라 원당암을 향해 걸어가면, 시원한 물소리가 무더운 여름을 잊어버리게 한다.
원당암으로 가는 길의 계곡에 물 흐르는 것을 보니 장맛철임을 실감케 한다.
연보라빛 '비비추'꽃이 원당암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철쭉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원당암' 입구
원당암을 감싸안고 있는 뒷 숲속의 푸르름이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패랭이꽃
보라빛 허브꽃이 여름을 건너 뛴채 가을마중을할 것 같다.
통일신라 시대의 석탑및 석등(보물 제518호)
석탑은 탑신부의 전 부재가 점판암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청석탑으로서 특수한 석탑에 속한다.
석등은 하대석과 상대석의 옥개석만 점판암으로 되어 있고, 다른 부재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화사석은 결실되었다.
보광전
보광전은 원래 '비로자나부처님'이 화엄경을 설법하시던 전각을 말하는데
원당암의 보광전에서는 아미타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있다.
보광전 內의 역대조사님들
염화실
혜암 대종사께서는 6개월동안 불도 때지않고 물과 잣가루만 먹으면서 수행하셨다.
장좌불와(長坐不臥)를 수행하신 까닭에 평생 이불과 베개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신 스님이셨다.
원당암 염화실은 장좌불와(長坐不臥눕지않고 정진)와 일중일식(日中一食 하루 한끼)으로 수행하신
대한불교 조계종 10대 종정이신 혜암스님께서 주석하셨던 곳이다.
끈끈이대나물
고요함이 깃든 고즈넉한 염화실의 정원이 참으로 예쁘다.
공부하다가 죽어라
공부하다 죽는 것이 사는 길이다.
옳은 마음으로 옳은 일을 하다가 죽으면 안 죽어요.
혜암대종사 법문중에서
원당암에서 바라보이는 가야산 정상
혜암 큰스님께서 생전에 머물렀던 '미소굴'
혜암 큰스님
일생을 청정한 수행자로 올 곧게 살아오신 혜암스님은 '성철 방장'의 뒤를 이어 해인사 총림의
방장을 역임하셨다.
2001년(82세) 12월 31일 오전 해인사 원당암 미소굴에서 문도들을 모아놓고
인과(因果)가 역연(歷然)하니 참선 잘하라. 당부하신 후 열반에 드셨다.
혜암 큰스님은 당대의 대표적인 선지식으로 성철 큰스님 열반 이후 불교계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종단개혁에 앞장을 서신 분이라고 한다.
혜암스님의 유품과 사리를 전시해놓은 '미소굴'은
2001년 12월 31일 입적하신곳이기도하다.
누군가 '미소굴'에서 기도 중이라서 방해가 될까봐 참배할 수가 없었다.
운봉교 전망대에서 누군가 가야산 정상을 바라보고 있다.
해인사 원당암에 대해서 궁금하면 끝까지 잘 읽어봐야 한다.
해인사 원당암의 '달마선원'
해인사 산내암자 원당암의 '달마선원'은 혜암 큰스님께서 재가불자들에게 참선을 지도하기 위하여
108평 규모의 선원을 세우고 재가불자들도 승려와 같은 참선수행을 하는 곳이다.
재가불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불교신자
운봉교 전망대에서 바라본 가야산 정상
저 높은 곳을 세번이나 올라 갔었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꿈만 같다.
혜암 큰스님은 해인사의 정신적인 지주라고 할 수 있는 '해인총림방장(93~96년)스님'을 지내시고
1999년 4월에 대한불교 조계종 제10대 종정스님으로 추대되었다.
경남합천군 치인리 10번지 가야산 해인사 산내암자 원당암을 참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원당암을 나서는 길에 산그늘 사이로 오후 햇살이 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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