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텃밭의 상추 도둑 고라니

nami2 2023. 9. 7. 22:34

세찬 바람이 불고 기온이 너무 서늘해서 태풍 경로를 검색해봤더니
13호 태풍 '윈욍'이 일본 도쿄를 관통할 것으로 예상 된다고 했다.
일본 관통 하는 것쯤은 그다지 신경 쓸 필요는 아니지만
그 여파로 이곳 동해남부 해안가는 낮 최고 기온은 25도였고
한밤중은 물론 이른 아침의 기온은 21도였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으나 이것은 완전히 간접 태풍 영향이었다.

다른 지방은 9월로 접어 들었어도 여전히 폭염이라고 했으나
이곳은 태풍의 간접 영향으로
바람도 거세고 기온은 21~25도로 춥다는 느낌 까지 갖게 했다.

그래서 태풍으로 인한 간접 영향도 무시 못했다.
다른 곳은 모르겠으나  

텃밭 만큼은 심한 바람 때문에 늘 긴장을 해야 했다.

그런데....
아침에 모종 해놨던 채소들을 살펴보러 나갔다가 기가막힌 꼴을 당했다.
아침 부터 혈압이 올라가는 일이 생기고 보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텃밭의 과꽃이 참 예쁘게 피고 있었다.
그러나 태풍 간접 영향으로
텃밭의 모든 채소들이 뿌리채 뽑힐 만큼의
거센 바람이 불고 있어서 불안 했다.

 

예쁘게 피는 꽃들이 다칠까봐 노심초사였으나
그보다 더 한 것은 태풍이 아니라  네발 달린 짐승이라는 것....
텃밭의 무법자가 겁도없이 드나든다는 것이 너무 화가났다.

이른 아침에  텃밭 한바퀴를 둘러보고
부추밭을 보니까
잘라내도 자꾸만 꽃대를 올리는 부추 때문에
차라리 부추김치를 담그면 어쩔까 싶어서
부추를 가위로 깨끗하게 잘라서 집으로 가려는데 
눈에 띄는 상추밭이

너무 기가 막혀서 그자리에서 주저앉을뻔 했다.

무더위에 밭을 만들기위해 삽질을 하고
밑거름을 한 후
여름상추  씨를 뿌리고 애지중지 가꿨다.

요즘 상추값이 금값이라서 정말 열심히 보살폈다.

 

내일쯤은 첫물 상추를  뜯어먹으려고 했었는데
오늘 아침에 들여다봤더니
너무 어처구니 없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고라니도 매일 아침 마다 상추밭을 들여다보면서
언제쯤 뜯어 먹을 것인가, 생각했다는 것이 더 기가막혔다.
인간과 짐승의 보는 눈이 같은 것인가
인간과 짐승의 생각이 같은 것인가

 

아니였다.
인간보다 짐승의 시간은 한발자국 빨랐다.
오늘 새벽에 고라니는 내게 빼앗길까봐
먼저 첫물 상추를 먹어버렸다.
상추 심어놓고 크는 것만 봐도 먹음직스러웠는데

고라니에게 상추를 빼앗길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고라니가 상추를 먹은 모습은 요렇게 먹었다.
싹둑 몽땅 먹은 것이 아니라 키워서 또 먹겠다는 의미로
상추 속고갱이는  남겨 놓았다는  것이
얼마나 지능적인인지?

속 고갱이는 살아 있었기에 또 상추는 자라겠지만

심어놓고 잘 키워서 고라니 입속으로....진짜 '으악'이었다.

 

상추밭의 절반은 내일 아침 식사로
남겨 두었다는 것이 더 기가막혔다.
절제를 하는 고라니  식사인듯 했으나

그나마 이것이라도 남겨두었으니까 맛은 보겠다만은

진짜 맥빠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또다시 인간과 짐승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그물망을 설치했다.

씨를 뿌려서 잘 키워놓고나서
아직 맛을 보지 못한 청상추인데...
진짜 부들부들 떨릴 만큼 약이 올랐으나
방법은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정도였다.

아직 어린 상추는 건들지 않았지만
이 상추는
쌉싸름한 맛의 조선상추라서
먹음직스럽게 자랐어도 고라니가 먹지 않는 상추였다.
고라니는 단맛이 있고 아삭거리는
양상추 종류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년 부터

고라니 때문에 양상추 종류를 심지 않겠다는 소리는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을뿐이다.

 

어제 '적양배추' 모종을 사다가  심었다.
어제 심은 것이라서 뿌리도 활착이 안된 상태였는데

고라니가  그 어린잎을 모두  먹느라 뿌리채 뽑아 놓았다.
다행히 싹이 나오는 속고갱이는 건드리지 않아서 다시 심어놨다.

고라니는 사람 몸에  좋다는 것은 유별나게도  잘 먹는데
적양배추를 키워 보려면 벌써 부터 그물망을 해야 했다.

함께 심어 놓은 양배추와 케일은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이 더 얄미웠다.
어떻게 해서  적양배추는 알아봤는지
생각할수록 기가막혔다.

부추가 고집스럽게 꽃을 피우려고 해서
이번에도 제법 많이 잘라왔다.
부추나물이나  부추 전 먹는 것도 이제는 지겨워서
이번에는 부추김치를 담그기로 했다.

여름에는 오이소박이와 오이김치에 넣어야 했던 부추였지만
이번에는 부추김치를  담궈 먹고 싶었다.

익히지도 않은...
담가서 곧바로 먹는 부추김치도 먹을만 했다.

텃밭에서 고라니 녀석이 절대로 먹지 않는 것은 부추와 깻잎이었다.
물론 쪽파와 대파, 배추와 무우, 당근도 있지만
고라니가 좋아하는 콩잎과 고구마는 일부러 심지 않았다.

고라니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지겨웠기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그 많은 주말농장 중에서
우리밭만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인지는 생각 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고라니는 태풍보다 더 무서운 존재라기 보다는
그냥  만나면 두둘겨 패고 싶을 만큼 약이 오르는 존재라는 것인데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는 여전히 정답이 나오지 않는다.
애써 가꾼 야채를 도둑 맞는 기분...
상상도 못할 만큼 화가나고, 그냥 허탈해지는 느낌이다.

인간이 한 짓이라면 신고라도 하겠지만

짐승 그거, 구제불능 존재....텃밭에만 가면 고라니와 싸울 각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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