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산사의 풍경

가을이 끝나버린, 양산 통도사

nami2 2022. 11. 25. 22:29

살고 있는  동해남부 지방의 도심 주변에는

이제서 단풍이 예쁘게 물들고 있었고, 길가의 가로수로 우뚝 서있는  

은행나무들도  샛노란 모습으로 절정을  이루고 있었는데...

매달 음력 초하루에 통도사 산문을 들어섰지만, 어제는 병원 가느라

오늘 음력 초이튿날에  부처님을 뵈러  산문을 들어섰더니

소나무 숲길 부터 느껴지는 풍경들은 삭막함 그 자체였다.
가을의 끝자락이라는 것 보다는 겨울 초입이라는 것이 더 잘어울 것 같은  

산사 풍경은  말로 형언 할 수없는 아쉬움뿐이었다.

 

해마다  늘 느껴보는 허전함인데,  올해는 왜 유난히 마음 한켠이 시려오는 것인지
그것은  더도 덜도 아닌 세월의 흐름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늙는다는 것은 어쩔수 없는 자연의 이치인데도  
또 한 해 만큼  늙어가고 있다는 것에  괜한 트집을 잡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목이 되고 있는  나무가지 사이로 하나씩 둘씩  

안간힘을 쓰면서 매달려 있는  나뭇잎들을  보면서

가을이 머물다가  떠나간 흔적 위에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듯 했다.
홀연히  떠나가지 않고, 나무곁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 아직은 보기좋았다.

만추의 계절이 아니라  겨울 초입 같아보였던  

통도사 일주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웬지 쓸쓸함이 파고드는듯 했다.

바라보는 것들은 모두가 쓸쓸함뿐이었다.
한달 전, 음력 10월 초하룻날에는  참 괜찮은 풍경이었는데...
산속 깊은 곳의  1개월은 너무 긴 시각이었나보다.

일주문 옆 감나무는 제법 화려해 보였다.
삭막한  늦가을 한 귀퉁이에서  '불멸'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낸 것은 아닌지?
그 모습 그대로  추운 겨울 바람속에서도 꿋꿋하게 머물러 있기를 바래본다.

일주문에서 천왕문 사이의 나무들에게서
붉은 단풍잎을 보물찾기 해서 찾아냈다 .
귀한 존재 처럼 보여졌고,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요사채 담장너머에  가을이  남아 있었다.
유종의 미...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법정스님의 수필집이 생각났다.

담장 안을 눈여겨봤다.
진짜 귀한 단풍이 통도사 경내를  대표하는 것 같았지만
요사채 뜰앞 깊숙한 곳에서  수줍은듯한 모습이 예뻤다.

또다른 요사채 담장너머에 붉은 감은
새들의 겨울 먹거리로 남겨져 있었지만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답기만 했다.

단풍잎의 보물찾기는 계속 되었다.

홀연히 떠나가기에는  많이 아쉬웠나보다.

 

경내 한켠에   '하얀 은목서' 꽃을 발견 했지만, 꽃은 거의 사그러들고 있었다.
그래도 만나봤다는 것이  중요했다.

범종각 뒷편의 울창했던 숲은 완전히 겨울나무가 되어 있었다.
시끄럽게 울어대던 여름날의 매미소리가 그리워진다.

담장가에서 바라본  개울 건너 저쪽 산비탈에는 낙엽만  수북했다.
쓸쓸함이라고 구태여 강조하지 않아도

바라보는  마음속은  허전할 만큼 쓸쓸했다.

그래도 고즈넉함이 가져다주는 적막함은 웬지 싫지 않았다.

 

긴 계단을 오르는  보살님이 계셔서  사진을 찍어봤다.
가파른 계단을 잘도 올라간다
사진을 찍고나니  어느새  꼭대기에 오르고 있었다.

가을을 배웅 하는 것인지
겨울을 마중하는 것인지
그래도 낙엽 쌓인 풍경은  멋졌다.

늦가을 끝자락의 통도사 전경

산비탈에서 바라본 요사채 기와 지붕위에는

가을이 내려앉아서 잠시 쉬고 있는듯 보여졌다.

 

한 해 동안 많은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었던

나무 밑의 벤취도 휴식을 가져야 할 시간이 온듯 했다.

개울가에  울창했던 나무들이 모두 나뭇잎을 떨구었다.

연두빛 새봄에서 푸르름이 있었던 여름날

그리고 단풍으로 물든 가을날은  참으로 짧은 듯 했다.

모두가 인생의 뒤안길에 서글픔만 남겨 놓는 것 같다.

  

얼마 만큼의 세월이 흘러서 고사목이 되었는지

천년일까, 오백년일까

천년고찰을 지켜온  세월속에서
일주문 옆의  빈 둥지 같은 나무가 숭고하기 까지 했다.

달랑달랑 바람에 흔들리는 마지막 잎새들이

바람 앞에 등불처럼 보여진다.

어째튼 잘버티라고  화이팅.... 응원 해줬다.

  

개울가에  일주문이 물속에 반영된 모습이 멋졌다.
언제봐도 지겹지 않은  아름다운 모습은
어느새  20년 넘게  봐왔던 가을  끝자락의  풍경인데도

여전히 사진을 찍고 또 찍고...

그렇게 또  많은 시간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갈 것이다.

 

오늘  통도사에서 집으로 가는  숲길에서 만난 노보살님은 

화엄산림법회를 올해 삼십년째 참석하시고, 경남 창녕으로 가신다고 했다.

경남 창녕에서 양산 까지 거리가 어딘데....

불심의 20년, 30년의 세월은 지루하지 않은채 잘도 흘러가는 것 같다.

노보살님의 30년 세월, 그리고 나의 20년 세월이 

통도사 일주문 문턱을  힘겹지 않게 넘나든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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