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웠던 여름날들이 늦장마 덕분인지는 몰라도 소리소문없이 사라져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요란을 떨며 울어대던 매미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풀벌레 소리가 스산한 바람과 함께 가을을 마중하고 있는 듯, 이른 아침의 찬이슬이 제법 차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코로나와 지긋지긋한 마스크, 그리고 폭염, 가뭄, 장마, 태풍....
뇌리속을 스쳐지나가는 기막힌 단어들을 나열해보면, 올해의 여름도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겨질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늦여름의 장마 덕분에
폭염이 빨리 사라졌다는 것에는 '장마와 폭염'중에 누구에게 어떤 점수를 줘야 하는지 잠시 갈등이 생긴다.
오랫만에 우산을 들지 않아도 될것 같은 날씨였기에, 해안 산책로를 걷기위해 길을 나섰다.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은채 혼자 걷고 싶을때, 가끔씩 찾아가는 곳이다.
바다와 하늘색깔이 그리 좋은 색깔은 아니었지만, 필수품인 우산과 생수 한통을 가방속에 넣었기에
걷고싶은 길에서 혼자 고독을 즐기고 싶었다.
아직, 가을은 아니었으나 바다에서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은 마음속 까지 외로움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무작정 혼자서 바닷가로 나왔는지도 모른다.
부산, 기장군 기장읍 연화리 해광사의 용왕단 앞은
초가을 부터 야생화들이 제법 눈에 띄였기에, 야생화 사진을 찍으면서 혼자 놀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다.
그래서 나가보았더니
여름꽃들은 이미 흔적없이 사라졌고, 가을꽃들은 꽃망울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 성급하게 야생화를 찾으러 나선 것도 있었지만, 그냥 혼자 걷고싶은 마음이 최우선이었다.
해광사 용왕단
갯가 풀숲에 하얀 '으아리꽃'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추석 무렵이면 제법 예쁜꽃으로 해안가를 하얗게 장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해안가 갯바위 위로 '댕댕이덩굴' 열매가 까맣게 익어가고 있었다.
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니까, 열매도 가을을 마중하는 것 처럼 반가웠다.
며느리 밑씻개
하늘타리꽃
누군가 심어 놓은듯한 '하늘타리'의 하얀꽃은 실타래를 엉켜놓은 것 같은 모습이 매력적이다.
해안선을 따라서 길게 넝쿨지어 가는 모습이 정말 멋져보였다.
해안가에서 만난 '해당화'꽃이 거의 사라진후, 딱 한송이 남아 있었다.
진작 갔었더라면 곱게 핀 해당화 군락지를 볼수 있었을텐데 아쉽기만 했다.
해당화 군락지를 지나서 '순비기나무'꽃을 찾아보려고 해안가를 걸었으나
아직 순비기나무꽃은 필 시기가 아닌 것 같아서 다음을 기약해봤다.
해안가 산책로 중간 지점에서 바라본, 우리집쪽으로 가는 방향이다.
멀리 기장읍 연화리도 보였고....
연화리를 지나서 대변항구 까지 걸어갈 예정이다.
대변항에 세워진, 2002년 월드컵 기념등대와 노란등대
오시리아 산책로라고 새롭게 이름 붙여지면서 더욱 걷기 좋은 길이 되었지만
울퉁불퉁한 좁다란 길에서 파도가 달려들 것 같은....두려움도 있었던
옛날 길이 더욱 친숙했던 이유는 처음 부터 그런 길에 길들여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옛모습이 사라지고 개발이란 이유로 자꾸만 변형되어가는 것이 약간은 못마땅해 하면서도
점점 새로운 길이 걷기 편함을 느껴지는 것에 대한 간사함은 어쩔수 없는 것 같았다.
혼자서 산책로를 걸을때 만나게 되는 긴의자는
사람이 앉아 있는 것보다는, 아무도 없는 텅빈 의자로 있는 것이 더 멋져보였다.
새롭게 조성된 산책로일때는, 많은 사람들이 산책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예전의 길은
해안로와 바다 사이에 아주 좁은 길이어서 혼자 걸으면, 두려움까지 생길때도 있었다.
혼자 걸을때 파도가 덮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그래서 빠른 걸음으로 뛰다싶히 할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재미있는 길도 역사속으로 사라져 갔다는 것이 씁쓸해졌다.
약간은 우중충 했지만
가을을 마중하는 바다는 곧 하늘과 바다가 모두 파란색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풀숲에서 들려오는 풀벌레소리가 제법 장단을 맞추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 까지도
가을 시작임을 알려주는... 여름 끝자락이다.
산책로에서 야생화를 찾으며
많은 시간을 혼자서 지겹지 않게 잘 놀다가,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메모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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