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심심해서 만들었던 보름나물

nami2 2021. 2. 26. 21:46

예전에는 정월대보름날은 하루종일 이집 저집에서 보름나물에 밥비벼 먹느라고 그냥 재미있었다는 기억이 있었지만

요즘은 세월이라는 것이 혼자서 밥을 먹게 만들어서 그냥 기분이 그저 그랬다.

누군가와 함께 보름날 세시풍속의 재미에 푹 빠져서 괜히 아침부터 마음까지 풍성 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현실앞에서 괜히 마음만 우울해지는 것 같았다.

 

보름날이 하루 지난후, 여동생 가족이 울산에 볼일이 있어서 서울에서 내려왔다가 집에 들리겠다는 소식을 듣고

이것저것 주섬주섬 냉장고와 냉동칸에 있었던 것들을 꺼내서 냉장고 비우기를 할겸...

보름나물이라는 것을 만들면서 우울했던 시간들을 달래보기로 했다.

"언니 집에 가서 보름나물과 오곡밥을 먹겠다는...." 동생의 전화가 그냥 고마웠다.

음식을 만들다보면  우울함이 사라지기에, 주로 비오는 날에 뭐든지 밑반찬을 만드는 이상한 짓거리가

오늘은 보름나물이라는 타이틀로 동생가족을 위한  반찬을 만들어 보았다.

 

정월대보름날 전날은 재래시장에도, 마트에도 풍성했다.

온갖 강정도 쌓였고, 부럼을 파는 곳도 많았으며, 묵은나물을 파는 사람들도 제법 명절 분위기였다.

혼자서라도 부럼을 깨보려고 사왔지만

보름날인 오늘 아침에는 괜히 마음이 시큰둥해졌다.

땅콩 한개 입으로 깨물어보고, 호두 한개 깨서 먹었지만, 별로 재미없었다.

3년전만해도 그런대로 보름날 아침에 부럼도 깨보고,귀밝이술도 먹었고, 나물과 함께 오곡밥도 먹었건만....

한지붕 밑에서 둘이 살다가 하나가 된 이 현실 앞에서는 모든 것이 재미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동생가족이 서울에서 내려온다는 전화가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우울할때는 늘 밑반찬을 잔뜩 만들거나, 맛있는 전을 부쳐 먹었기 때문이다.

 

보름나물은 일년 내내 준비 해놓은 것도 있었고, 시장에서 사오기도 했다.

다래순과 취나물, 그리고 이름을 들었어도 생소해서 금방 까먹은 '산나물'은 시장에서 사왔다.

그리고 집 냉장고 비우기를 했더니 10가지 나물을 만들수 있었다.

 

보름날인 오늘은 아침부터 오후 까지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비오는 날에는 주방에서 날궂이를 잘하는 나의 묘한 습관 때문에, 잔뜩 어질러 놓았다.

묵은 나물을 볶을때는 국간장과 들기름 그리고 대파,  참기름 깨소금이 필수품이다.

 

지난해 말려두었던

무청 시래기와 가지나물과 고구마줄기, 그리고 5월에 사다가 냉동칸에 두었던 죽순

텃밭에서 키웠던 무우, 유채  이 모든 것들이 나물이 되어 주었다.

 

취나물과 무청 시래기를 들기름과 국간장에 밑간을 해두었다.

 

시래기 나물은 농사 지은 것으로 삶아서 말렸다가  다시 물에 푹 불렸다가 삶았더니

부드러운 시래기 나물이 되어주었으며

고구마줄기도 말린 것을 물에 불렸다가 1시간 동안 푹 삶아서 볶으니까 맛이 부드럽고 먹을만 했다.

 

정월대보름날의 나물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죽순나물이었다.

5월에 시장에 나온 것을 사다가 냉동칸에 넣었다가, 이때 꺼내서 들기름과 국간장에 밑간한 후

볶으면 부드럽고, 고소하고 식감도 아삭거리고...맛이 괜찮았다.

 

        다래순, 고구마줄기, 이름을 알 수 없는 산나물, 무청시래기, 취나물

 

  죽순나물, 콩나물, 유채나물, 무우나물, 말린가지나물

  아마도 재료가 냉장고에 더 있었다면 더 만들어놨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시간을 소비하면서 만들어 놓은 반찬으로 아직 밥을 비벼먹지 못했고

   그냥 간단하게 라면으로 저녁식사를 했으며, 아직 오곡밥도 하지 않았다.

   토요일에 서울에서 울산을 거쳐 집으로 오는, 동생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기위해

   오곡밥은 하루 미뤘다가 하기로 했다.

   누가보면 혹시 머리에 열이 있는것이 아닌가 의아해 할것이다.

   이렇게 반찬을 많이 만들어놓고 식욕이 없어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면...

   당연히 머리에 열이 펄펄 끓어서 헷가닥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거나 말거나

   내 입맛은 진짜 저 멀리 달아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밤에는 밤새도록 비가 내린후에, 하루종일 부슬부슬 비를 뿌리는 흐린 날씨여서

휘영청 밝은 정월 대보름달에 대한 기대를 하지않기로 했던 오후에, 걷기운동을 하다보니

들판에 핀 홍매화가 웬지 오늘따라 쓸쓸해 보였다.

마음이 울적해서인지, 꽃을 보는 느낌도 시시각각 달라진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 정월 대보름날이었다.

그런데...

기대하지 않았던 보름달이 저녁 8시쯤에 훤하게 떠있는 모습을 베란다 창문을 통해서 보게되었다.

아마도 어두워지는 밤 부터 날씨가 맑음이 되지 않았을까?

저녁에는 일단 집으로 들어갔으면, 좀처럼 밖에 나가지 않는 습관 때문에

올해는 일년중에 가장 밝다는, 정월 대보름달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데

구름속으로 들락날락하는 모습이 그저 그랬다.

어디선가 정월대보름날을 마무리 하는 달집태우기를 하고 있겠지만, 코로나로 인한 달집태우기 행사도

그저 그랬을 것이라는 재미없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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