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일기

시부모님 기일

nami2 2018. 1. 27. 02:08

            해마다 이맘때면  날씨가 춥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올해의  기일에는  유난히 날씨가 추웠다.

            일년에 몇번씩이나 지내야 하는 제사 중에  시부모님 기일은 겨울이었고, 더구나 일주일 간격으로 있었다.

            지난 가을에  있었던 시조부모님 제사는 일부러 모른척 했었지만, 이번 만큼은 그냥 모른척 하기에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우리집 아저씨가 몹쓸병에 걸린후, 병원에서 들었던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에 충격을 받아서

            앞으로는 조상님을 모시는  어떠한 제사도 지내지 않을 것이라고 가족과 친지들 앞에서 선포했었다.

            고지식한 우리집 아저씨는  요즘식으로 대충이 아니고, 격식을 차려서 정성을 다해 조상님들 제사를 모셨건만

            당장 제사를 모시는 사람을 데려가려고 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면서  애꿎은 조상님들 원망을 했었다. 

            

            여름부터 시작된 투병생활의 고통은 말로 다 표현 못할 만큼  긴박한 상황이었는데

            외아들이란 것 때문에 조상님 제사를 모시는 것이 큰 문제가 되었다.

            갑자기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무슨 우환이 더 생기지 않을까 노심초사 고민을 했지만, 그것도 머리속만 헝클어질뿐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지난 추석명절에도 차례를 모시느냐를 놓고 우왕좌왕 하다가  환자 마음 다치고 싶지 않아서

            아무생각 없이 차례음식을 만들어 놨더니, 큰 누님댁 조카들이 늦은 아침에 찾아와서 차례를 지냈었다.

            그후 환자의  건강 상태가 악화되는 것 같아서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는  상의 할 것도 없이 생략했었다.

            많이 아픈 환자가 있는 집에서는 제사는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를 귀담아 듣고 핑계삼아 실천을 했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새해 들어서 달력을 넘기면서  올해 부모님 제사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환자에게 물었더니 대답이 없었다.

            다리의 인공관절을 수술한 것이 아직 부자연스러워서 다리를 굽히지도 못하는데

            절을 하는 것에 무리하지 말라는,  수술했던 의사의 소견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서로 눈치만 보았다.

            점점  기일은 다가오는데  준비를 해야 할지 말지,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경상도에서는 제사 상에 꼭 올라가야 하는 것이 문어인데, 마트에 가면 언제든지 살 수 있는 것이지만

            우리집 제사는 겨울에 일주일 간격으로  세번 있기 때문에, 어부가 직접 잡아 오는 돌 문어를

            재래시장에서 한꺼번에 세마리를 구입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설명절이 다가오면서 대목이라고, 문어 값이 껑충 뛰기 때문에 감당을 못하기 때문이다.

            제사를 지낼것이냐 말것이냐는  '문어를 살것이냐 말것이냐'  그뜻이다.

            또한 제사음식을 어차피  살아있는 사람이 먹는 것이기에 기왕이면 돌문어를 사다가

            손질을 해서 잘 삶아 놓았다가 한마리씩 제사 때 쓰게되면, 조상님도 산 사람도 모두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사를  어떻할것이냐고 질문 했던 날 부터, 꼬박 열흘만에 '제사 준비 하라는' 대답을 들었다.

            아픈 몸으로 제사를 지낸다는 것에 많은 갈등을 느낀, 그 속마음은 말을 안해도 알 것 같아서

            본인 결정에 따르겠다는  내뜻을  무언으로 전달했더니  어렵게 결정을 해주었다.

            우선 시장에 가서 꿈틀거리는 돌문어를  세마리를 사다가  손질을 하고, 잘 삶아서 냉동고에 넣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추워진 날씨이지만, 제사 준비 하느라  혼자서 시장을 몇번이나 갔는지 모른다.

 

            어젯밤이 시아버님 제사였다.

            환자의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지만, 그래도 아직은 항암치료중인 암환자인데, 무리를 하면 안될 것 같아서

            나 혼자서 밤을 깎고, 음식을 하고, 상을 차리고, 젯상에 술잔 올리고, 절을 하고, 물밥 올리고

            상을 치우고, 설겆이 하고....

            1인2역을 했더니 다리도 후들거리고, 허리도 아프고, 피로가 한꺼번에 몸살을 몰고 오는듯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환자가 마음 편하다면  혼자서라도 다 해야되겠지, 애초부터 작정을 했었다. 

 

            손이 귀한 집에서 독자라는 이유로 아버지 일찍 돌아가시고, 아홉살 어린 나이 때 부터 

            조상님들 제사를 지극 정성으로 모신 후손인데

            젊은 나이에 몹쓸병에 걸리게 해서,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려는 것에 너무 화가나서 

            앞으로는 절대로 제사를 모시지 않겠다고 선포를 했더니,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쓸쓸한 기일이 되었다. 

           

            다음 주 목요일에는  시어머니 기일이다.

            병원에 입원중이면, 은근슬쩍 그냥 넘어 가려고 했던 나의 불경한 마음보를  조상님은 아시지 않을까?

            

           

            공교롭게도  4차 항암 끝나고, 퇴원후 일주일 되는 날에 시아버님 제사가 있고,

            또다시 5차 항암 치료 하기 위해 입원하러 가는 하루 전 날에 시어머니 기일이다.

            설 명절에 차례 모시는 것도, 퇴원후 일주일이 되는 날이 되고보니  참으로 기가막힌 날짜인 것만은 사실이다.

            아무래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조상님 모시는 제사날인 것 같았다.

 

            오늘 병원에 가서 또다시 CT를 찍고 왔다.

            4번째 항암 치료후 결과를 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어제 저녁에 제사를 지내고  오늘은 하루종일 금식을 했다.

            제사음식 잔뜩 해놓고 ,CT를 찍기위해 금식을 한다는 것도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었다.

 

            병이 호전되고 있는데 , 부모님 제사를 모시지 않았으면 계속 마음이 불편했을텐데

            어째튼 힘들게나마  제사를 모신 것을 잘했다고 생각하느냐고  환자에게 물어봤더니, 잘했다는 대답과 함께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했다.

            아마 이제껏 20년 가까이 제사를 모시면서, 수고했다는 말은 처음 들어본 소리인 것 같았다.

            앞으로도 내가 모든 것 다 알아서 할테니 ,그냥 옆에 서있기만해도 좋으니 오래도록 함께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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