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리는 여름 덕분에 오랫만에 '극락암'을 찾아갔다.
영월루 앞의 원추리들이 파릇 파릇 자라고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원추리꽃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비를 많이 맞아서 훌쩍 키가 커진 참나리꽃들이 극락암을 찾는 길손들을 마중하고 있었다.
봄날에 흐드러지게 꽃이 피던 연못가의 벚꽃나무에서 매미들이 고요함이 깃든 암자의 정적을 깨트리고 있었다.
극락암의 여름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웠으며, 뒷산에서 부는 바람도 여전히 시원했다.
초복이 지나고, 중복이 지났으며,엊그제 입추(入秋)였고, 며칠 있으면 '말복'인데
댓돌위에 신발은 여전히 겨울에서 멈추었다.
극락암의 귀중품 '청동반자(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386호)'
태극무늬가 새겨져 있고, 왕실의 수복과 안녕을 기원하는 원문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번지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 산내암자인 극락암의 법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가즈런히 정돈된 극락암의 '좌복(방석)'
법당에 놓여 있는 수행자의 좌복(방석)은 선방수좌들을 위한 필수품이다.
선(禪) 은 곧 좌선이라고할 만큼 앉아서 하는 것이 대표적이기에 선방에서 좌복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좌복은 수행을 위해 몸을 보살피는 소중한 기구이다.
그러므로 이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
좋은 좌복을 차지하려고 다투거나, 함부로 던지거나, 절을하기위해서 발로 밀거나
법회를 위해 법당에 준비해놓은 좌복을 밟고 돌아다녀서는 안된다.
법당에서 백팔배를 하시는 스님
극락암의 무량수각(無量壽閣)이라는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라고 한다.
극락암 영월루의 뒷쪽 강당 입구에는 '설법전'이라고 한다.
하얀 도라지꽃의 봉우리가 암자의 고즈넉함을 더욱 부추기는것 같다.
삼소굴과 원광재를 뒷배경으로 빨간 '접시꽃'이 극락암의 아름다움을 설명하고 있는것 같다.
극락암 뜨락에 연꽃이 피었다.
고려 충혜왕(1344)때 창건하고, 조선 영조(1758)때 중건 되었으며
1968년 이후 가람 전체를 경봉선사께서 중건 중수 했다고 전해진다.
극락암 뜨락의 백련
극락암은 경봉선사가 1927년 12월13일 새벽에 촛불이 춤을 추는 것을 보고 대오한 장소이며
경봉 대선사께서 91세에 입적 하실때 까지 50년을 주석하셨던 곳이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노란'금계국'도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조사전(극락암 호국선원)
극락암 호국선원 뒷뜰에 홀로히 꽃을 피우고 있는 '상사화'가 너무 아름 다웠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수행 하시는 스님들에게 방해가 되지는 않는지
염려하면서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 살금 다가가서 꽃을 찍었다.
이곳 저곳 구석 구석 야생화들이 지천인 극락암은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아름다운 암자 라고
누군가에게 꼭 말해주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