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태풍이 스쳐 지나간 텃밭

nami2 2023. 8. 10. 22:39

정전까지 되어서 세상속에 고립된듯한 불안감속에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시간은 낮 12시쯤...
해마다 겪는 자연의 몹쓸 장난질에
또다시 겁먹어서 긴장을 해야 했던 어처구니 없는 시간들이었다.

해안가에 살면서 해마다 몇번씩 겪어내는 무지막지한 태풍이
이제는 면역이 될법도 하건만
그래도 설마하는 마음속에는 무언가 알 수없는 두려움은 있었다.

애써 가꾼  농작물이 한순간에 엉망이 되어버렸을 서글픔 앞에서
그냥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어쩔수 없이 마주하게 되었을 때의 허탈한 상실감은

지켜보는 내내 가슴 한켠이 녹아내리는 심정이었다.
올해 또 겪기 시작했다는 것은...
가을이 끝날 때 까지, 아직도 몇번의  시련이 남았음에도
마음을  비우기에는 그냥 자꾸만 기가 막혔다.

태풍이 찾아오기 전 날의 텃밭은 그냥 평화스러웠다.
예쁘게 피고 있는 코스모스는

가을을 마중하는 것 처럼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나팔꽃 역시 싱그러움 까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여름날의 아침 텃밭 풍경이었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기 전 까지의
텃밭은 예쁜 꽃들이 피고지고 있어서
날씨는 무더워도 가볼만 했다.

그런데...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텃밭은 또다시 아수라장이 되었다.
붉은 고추를 따내는 것이 재미있어서
더위도 잊은채  날마다 정성을 들였건만
거센 바람에 얼마나 시달림을 당했는지

태풍이 다녀간 흔적은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춧대를 일으켜 세우고
줄을 묶어서 응급조치를 해야 했고
고추밭속에 떨어진  파란 고추는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냥 화가나서 모든 것을 팽개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또 자연의 횡포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냥 우산을 들고 한바퀴 돌아보려고 나갔던 텃밭에서
이리저리 뒹굴고 있는 고추와 가지, 오이를
주워모으면서 머릿속은 하얗고, 가슴은 멍해졌다.

나무에서 떨어진 것들은 내일되면 시들어버릴...
그래서 땅에 떨어진 고추와 가지를 주워다가
흙탕물을 씻어냈더니 아주 멀쩡했다.

냉동실에 넣어놓고 필요할 때마다
쓸수밖에 없는 땅에 떨어진 고추를 보니
속이 상할뿐이다.

텃밭에 심겨진 살구나무가 뿌리째 뽑혔고
곧 피게 될 가을 화초들이 모두 엉망이 되었다.

예쁘게 꽃을 피우던 꽃밭도 낯설기만 했다.
꽃잎이 떨어져 나갔고, 쓰러져 뒹굴고
흔적없이 사라진 꽃들도 있었다.

대파밭도 수난을 겪기는 마찬가지...

호박넝쿨도 많이 흩으러져서 내려 앉았지만
다행스럽게도 뿌리는 살아있었고
어린 호박들도 잘 매달려 있었다.

그래도 태풍은 튼실하게 익어가는 사과는

못본체 한 것 같았다.
굳건하게 잘 매달려  있었음이 신기했다.

엄청 잘 뻗어가던 오이 넝쿨을 엉망으로 만들어놨다.
그래도 안간힘을 다해서

매달려 있는 오이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떨어지지 않고 대롱대롱...고마웠다.

얼마나 세찬 바람에 시달렸는지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애잔함...
가지 한개가 거의 떨어질 위기를 보니
그냥 마음이 짠했다.

텃밭에서 바라본
우리 아파트  주변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억지로 억지로 마음을 비웠다.
구름속의 푸른 하늘이 마음을 다스리는듯 했다.
내일 부터 날씨는 또 더울텐데...
복구 할 것을 생각하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텃밭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맨드라미!!

아침 햇살에 노랗고, 예쁘게 피던 '금화규' 꽃나무들이 
모두 땅위로 뒹굴고 있었다.
내일 아침에  꽃이 피려는지는 아직은 미지수였지만
나약한 꽃들을

이렇게 망쳐놓고 지나간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아마도 오래도록 볼품 없이 뒹굴 것 같다는 서글픈 생각뿐이다.

 

텃밭 한켠의 다른 밭에서 다닥다닥 꽃봉오리를 만들고 있던
금화규 10포기는 뿌리째 뽑혀  있어서
어쩔 수없이 뽑아버렸음이 아쉽기만 했다.

약용이나 꽃차로 마시기 보다는 꽃이 예뻐서 심었는데

그것도 태풍은 예쁘게 봐주기 싫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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