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련암은 의상대사께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는 바닷가 석굴(관음굴) 위에 세워진 암자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신흥사 말사인 낙산사 산내암자이며,1984년에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36호로 지정되었다.
홍련암은 2005년 4월 대형산불로 화마가 덮칠 때에 낙산사의 대부분 주요건물과 홍련암 요사채가 전소 될때에도
기적적으로 재난을 면한 곳이기도하다.
넓고 넓은 망망대해! 고즈넉한 늦가을의 정취가 가슴에 응어리가 풀리는듯하다.
이곳은 의상대사께서 낙산사를 지을 당시 머무르면서 참선하였던 곳으로 옛부터
의상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의상대는 낙산사 홍련암의 관음굴로 가는 해안가 언덕에 있다.
해국
동해 남부 작은섬에서 보았던 '해국'을 홍련암 가는길에서 만나게 되어서 반가웠다.
의상대(시도유형문화재 제48호)
1926년 만해 한용운 선사께서 낙산사에 머물때 육각정으로 건립한 정자로 해안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어 주위의 소나무와 기암절벽, 망망대해가 함께 어우러진 최고의 일출풍경을
볼 수 있는아름다운 곳이다.
바위 구절초
무언가를 간절하게 기도하시는 비구니스님
바닷가의 바위 위에 피여진 해국이 너무 신기하게 보여진다.
'紅蓮庵'이라고 씌여진 편액은 경봉선사의 글씨
홍련암 관음굴 입구
홍련암 법당 마룻바닥에는 정사각형의 구멍이 뚫여 있다.
구멍으로 들여다본 법당 밑은 바닷물과 바위가 내려다보이는데,그곳이 관음굴이라고 했다.
관음굴 위에 의상대사께서 홍련암을 지으셨다고 한다.
신라 문무왕11년(671년)에 의상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하여 이곳에 와서
파랑새를 만나 뒤를 따라 갔는데 파랑새가 석굴 안으로 들어가므로 이상히 여겨 굴 앞에서
밤 낮으로 7일동안 기도를 했다.
3일후에 바다위에 붉은 연꽃(홍련)이 솟아나더니 그위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서 의상대사는
드디어 친견 할 수 있었다.
그후 의상대사께서는 이곳에 암자를 세우고 홍련암이라 이름짓고
파랑새가 사라진 굴을 관음굴이라 불렀다고 한다.
바위틈새로 '해국'을 볼 수 있었다.
낙산사 홍련암에 수녀님들의 모습이 보였다.
미역취
까마중
개망초
홍련암 연하당
요사채인 홍련암 '연하당'은 2005년 대형산불로인해 전소된것을 다시 복원한 것 같았다.
낙산사 홍련암 감로수
삼국유사에 기록된 것을 보면 원효대사가 낙산사를 참배하기위하여 오다가보니 흰옷을 입은 여인이
논에서 벼를 베고 있었는데,대사가 그 벼를 달라고하자 여인이 벼가 익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대사가 다시 길을 가다가 이번에는 속옷을 빨고 있는 한 여인을 만나 물을 청했는데 여인은 빨래를 빨던
더러운 물을 떠주자 원효가 그 물을 버리자 이 때 소나무 위에서 파랑새 한마리가
스님은 가지마십시요. 하고는 숨어버렸다.
원효가 돌아보니 그 여인은 없어지고 짚신 한짝이 남아 있었는데 절에와서보니 나머지 짚신 한짝이
관음상 앞에 있었다.
비로서 원효는 앞에서 만났던 그 여인이 관음의 진신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기록을 보고 그 우물은 오봉산 정상 넘어에서 찾아내어 이곳(홍련암)과 낙산사 원통보전 앞에
흘러넘치게 하였다고 한다.
술패랭이
홍련암 에는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시는 관음성지가 증명되듯이
지금은 11월 늦가을인데 봄과 여름을 넘나드는 꽃들이 아직도 많이 피어 있었다.
마른 풀 숲에서 찾아낸 꽃들은 그리 싱그럽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아름다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