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에 어렵게 떠났던 경북 청도 주변의 사찰여행에서 운문사 참배를 한 후
두번째로 찾아간 곳은 청도 금천면 박곡리에 위치한 천년고찰 대비사였다.
운문사를 나와서, 운문댐을 지나서, 들길을 지나고, 과수원길을 지난 후 또 저수지...
그렇게 가다보니 한적한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대비사는
운문사와 같은 시기에 창건된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천년고찰이었다.
이곳 대비사는 20여년 전에 주지스님으로 계셨던 비구니 스님과의 인연 때문에
10여년 남짓, 안방드나들듯 다녔던 절집이었다.
그러다가 비구니 스님께서 다른 곳으로 떠나가면서 인연이 끝난 곳인데
이번에 10년만에 고향집 다니러 가는 마음으로 설레임과 함께 가봤더니...
옛모습은 흔적 간곳 없고, 생각치도 않았던 절집이 그냥 낯설다는 느낌뿐이었다.
대웅전과 요사채 1동 그리고 삼성각뿐인 단촐한 암자 같은 분위기의 절집이었는데
큰 절집 처럼 바뀌어 있었음이 첫번째는 황당했고 두번째는 낯설기만 했었다.
이런 저런 일로 10년 정도 발길이 끊긴 절집인데 큰 불사가 있었던듯 여겨졌으나
정겨웠던 고향 마을이 도시화 되어서 실망했던 그런 느낌의 아쉬움만 남겨졌다.

예전 10년전의 대비사는
앞 뒤로 산자락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건물이라고는
대웅전과 요사채 1동 그리고 삼성각뿐이었다.
그런데 10년 후 지금은
입구에 범종루가 세워져 있었다.
언뜻 이곳이 예전의 대비사가 맞나?
의하해 했었던 것이 황당 모드가 되었다.

그때가 봄날이라는 것이 확실한 것은
봄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다는 것이다
서부해당화 꽃이 절집의 첫인상이 되었다.

올해 봄날에 금낭화를
가장 예쁘게 봤던 곳이 대비사였다.
한참 진행중인 어수선한 공사가 아니었다면
그런대로 예뻤을 금낭화였다.

봄날에만 예쁘게 꽃이 피는
금낭화의 꽃말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였다.

대비사는 신라 진흥왕 18년(557년)에
신승(神僧)이 호거산에 들어와 3년 동안 수도후
진흥왕21년(560년)부터 절을 짓기 시작하여
7년 동안 5갑사를 완성하였는데
중앙의 대작갑사(운문사)를 중심으로
서쪽의 소작갑사 또는 대비갑사라고 했던
5갑사 중 한곳이 대비사였다.
그 후 신라 진평왕 22년(600년)에
원광법사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운문 5갑사는
대작갑사, 천문갑사, 가슬갑사, 소보갑사 대비갑사
현재 남아 있는 사찰은 대작갑사(운문사)와
대비갑사(대비사) 뿐이다.

대웅전 뜰앞에 무스카리꽃이 피고 있었다.
무스카리 꽃말은 '희망, 절제된 사랑'이다.

대웅전 옆의 이 건물은
10년 전에는 종무소 겸 요사채 였었다.
이곳에서 주지스님과 차를 마시던 시간들이
아련한 추억이었는데
이곳마져 옛모습이 사라진다는 것이
아쉽고 허전하고 씁쓸하기만 했다.

연분홍 능수 홍도화

1685년 (조선 숙종11년)에 중건된 대웅전은
보물 제834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 건물은 정면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맞배지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시대 중기의 건축양식을 잘 갖춘 건물이다.

대웅전에 모셔진 석조석가불좌상은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이며
석가불좌상 뒷면의 영산회상도 탱화는
보물 제 1957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곳에
텃밭과 해우소가 있던 곳인데
지금은 요사채 건물들이 제법 들어서있었다.

돌계단을 오르면
삼성각 건물 1동이 있었으나
지금은 산으로 오르면서
여러 전각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자목련이 흐드러지게 피는 삼성각 가는 길

이 사찰의 이름을 대비사라고 한 것은
불교의 대자대비 라는 뜻으로
지어진 것이라고도 하며
일설에는 당시 신라 왕실의 대비가 수양차
이 절에 와서 오랫동안 지냈기 때문에
소작갑사를 대비갑사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삼성각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
앞에 바라다보이는 산은 억산이고
그 산너머에 운문사가 있다.
예전에는 비구니 스님들께서는
억산을 넘어서 운문사를 왕래했었다고 하는데
예전 주지스님과 함께 등산한 적도 있었다.

대비사 뒷동산에는 양지꽃이 제법 많았다

양지꽃의 꽃말은 '사랑스러움'이다.

봄맞이꽃의 꽃말은 '봄의 속삭임'이다.

청도 대비사는 불사가 많이 이루워져서
약간 혼란스럽기는 했으나
풍경 그 자체는 아름다운 산골이었다.

경북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794 대비사는
창건당시에는 박곡리 마을에 있었으나
고려시대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고
11기의 고승대덕 부도가 이곳의 역사를 전해준다.
현재 박곡리 마을입구에 보물 제 203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는 석가여래좌상은
석굴암 불상과 같이 통일신라시대 불상 중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대비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 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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