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5시 쯤, 잠에서 깨어나면 으례히 하는 일은 일기예보를 보는 것이다.
가급적이면 날씨가 흐림이었으면 했고
또 아침기온은 25도 안팎으로 기온이 내려가기를 바래보지만
그것은 순전히 희망사항일뿐, 요즘 들어서 단 한번도 나의 바램은 맞지 않았다.
5시50분 쯤에 해가 떠오르면서 시작되는 햇볕 쨍쨍은....오늘도 또
완전한 죽을맛이구나" 하면서 밭으로 가는 발걸음은 그다지 가볍지는 않았다.
처서가 지나면 곧 김장 무우와 당근씨를 뿌려야 했고
늦어도 9월초에는 김장배추 모종을 심고, 쪽파 씨도 심어야 하건만
기승을 떠는 불볕더위가 절대로 누그러들 기세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인데...
날씨가 덥다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가을 농사를 망칠 수는 없었다.
그러다보니 그냥 '나 죽었소' 하면서 삽질을 하고 흙을 부수고 거름을 해서
밭을 만들어놔야 한다는 것이 요즘 같은 불볕더위에 서글픈 과제가 된 것 같다.

엊그제 딱 한송이씩 피었던 텃밭 한켠의
흰꽃 나도샤프란이
하루가 다르게 하나씩 꽃송이가 늘어났다.
새벽에 억지로 가는 텃밭이지만
텃밭에 가면 이런저런 꽃들이 피고 있음이
활력이 되는 것 같아서 그다지 싫지는 않았다.

한동안 꽃이 사그러드는줄 알았던
자주닭개비 꽃도 웬일인지 꽃을 보여주었다.
더워서 죽을 맛인 내게
응원을 하듯, 꽃을 피우는 것이 고마웠다.

7월 초에 도라지씨를 뿌린 밭인데
쑥쑥 자라더니
하나 둘 꽃이 피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도라지 씨를 뿌리면서
가급적이면 백도라지이길 바랬건만
꽃들은 모두 자주색 꽃만 피고 있었다.
백도라지는 흰꽃인데...
어쩜 밭 전체가 보라색 꽃밭이 된 것인지?
그래도 도움이 되거나말거나
이 폭염에 보라색 도라지 꽃은 그냥 예뻤다.

늦여름에서 초가을 내내 꽃이 피는 부추는
폭염이 지겨웠던지, 빨리 꽃을 피워서
씨를 만들자고 작정한 것 같았다.
하루가 다르게 꽃 피우는 것도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텃밭에서 가장 여유롭고
예쁘게 꽃을 피우는 것은 맨드라미였다.
왜냐하면 맨드라미는 아열대가 원산지라서
폭염을 즐기는 것 처럼 보여졌다.

아침 6시 20분의 기온은 29도였다.
동쪽에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은
말로 표현이 안될 만큼 뜨거웠다.
더구나 바람도 불지 않아서 환장 그 자체였다.
10분 삽질을 하고 5분 휴식이다.
그렇지 않으면 쓰러질 것 같은 위기였다.

1시간 가까이 삽질을 하고
이번에는 흙을 곱게 부셔야 한다.
내가 이짓을 꼭 해야 하는가 생각도 들었으나
그래도 아침 마다 먹는 당근쥬스를 생각하면
꾹 참아야 하지 않겠나
인내심 테스트 받는 기분으로 해야 했다.

삽질을 해서 흙을 뒤집었더니
굵은 흙덩어리를
부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흙을 모두 부수고 나서
이번에는 거름을 뿌리는 일인데
10키로 거름 푸대를 들어 올리는 것도
더운 여름날에는 할 짓이 아니었다.
너무 무리를 하면
약값이 더 들어 갈 것 같아서 팽개치고
내일로 미루워야 했다.
이미 옷과 머리 꼬라지는 물에 빠진 생쥐..
땀범벅으로 엉망된 것이 우습지도 않았다.

어제 아침에 일을 하다가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쓰러질 것 같았기에
팽개쳤던 밭의 거름을 오늘 아침에 뿌렸다.
그리고 흙과 거름을 섞는 일을 했다.
이 밭은 당근 씨를 뿌릴 예정이다.

내일은 또 저쪽 밭고랑에서
삽질을 하고, 흙을 부수고
거름을 해야 하는 일은 반복이다.
폭염의 늦여름 텃밭이 아니라
불지옥 같은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유난히 더운 올해가 유감스럽기만 했다.

너무 덥다보니 상추도 성장이 늦다.
그래도 거름 맛을 보여주면 낫지 않을까
그래서 먹을만한 상추 잎을 뜯어내고
거름을 뿌려주었다.

오이 넝쿨에서 새롭게 새 순이 나오면서
오이가 주렁주렁인데
과연 폭염에 오이를 따먹을 수 있을까
고맙기는 했으나
오이 성장이 불가능쪽으로 기울었다.

오이 넝쿨 밑에 상추 씨를 뿌렸더니
15일 만에 상추 잎이 4개 정도 크고 있었다.
잡초는 뽑고나서 돌아서면 또 쑥쑥인데...
채소는 왜그렇게 성장이 늦는 것인지?
폭염에 상추값이 금값이 될 것이기에
미리 씨를 뿌려놨더니 발아 된 것만도 감사했다.
그러나 저러나 처서가 지나면
상추 종류는 잘 크는 것으로 알고 있었건만
올해의 처서(處暑)는 여전히 불볕이라는 것이
은근하게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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