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에 위치한 김정희 유배지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추사 기념관 건물에서
기념관으로 들어가려면
지하로 내려가는 곳이 아주 가파른 계단으로 이루워졌는데...
이곳을 설계한 건축가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로 유배오면서 느꼈을 절박한 심정을
이곳 추사관을 찾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느껴보라는 취지에서 건축했다고 한다.
추사관은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약간 방심하면
발이 삐긋할 만큼, 아주 위험할 정도의 가파른 계단으로 되어 있었다.
물론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도 있었으나 가급적이면
가파른 계단을 어렵고 힘들게 내려가보는 것도 괜찮다는 느낌이었다.
2010년에 세워진 추사관에는 김정희에 관련한 역사 자료가 전시되어 있는데
추사관을 한바퀴 돌아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그림이 '세한도'였다.
추사 김정희 유배지로 가다보면
길고 긴 돌담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멋진 돌담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제주 대정현 성곽이었다.
성곽 주변에 노란꽃이 많이 피어 있었다.
유리홉스라는 꽃이 인상적이었다.
유리홉스꽃은 국화를 닮았고
잎은 쑥갓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유리홉스꽃은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가 원산지이며
쌍떡잎 식물의 상록 소관목으로
꽃말은 '영원한 아름다움'이었다.
대정현 성곽 주변에는 감나무들이
제법 많았는데
모두 토종감인지, 생김새가 작은 감들이었다.
김정희 자신이 쓴 시제에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라고 쓰여있다.
한겨울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비로서 알수 있다는 뜻이었다.
국보 제180호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는
올곧은 선비 정신이 그대로 담겨있는
조선 후기 문인화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고 한다.
세한도(1844년) 국보 제180호
세로 23cm 가로69.2cm
종이 바탕에 수묵
세한도는 지위와 권력을 박탈 당하고
제주도 유배지에서
위리안치 귀양살이 하던 김정희가
사제간의 의리를 잊지않고 두번씩이나
북경에서 '경세문평' 등 새로운 귀한 책을 구해다 준
제자 '우선 이상덕'에게 1844년(헌종10년)에
그 답례로 그려준 그림이라고 한다.
*위리안치는 집 둘레에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돌리고
그 안에서 사람을 가두는 유배형이다.
세한도의 그림은
단색조의 수묵 그리고 마른 붓질과
필획의 감각만으로 이루어졌고
긴 화면에는 집 한채와 그 좌 우로 지조의 상징인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두 그루씩 대칭을 이루며
지극히 간략하게 묘사 되어 있을뿐
나머지는 텅 빈 여백으로 남아 있다.
가까스로 다시 되찾은 국보 세한도
추사 김정희는 시(詩) 서(書) 화(畵) 분야에서
독창적이며 뛰어난 업적을 남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예술가이다.
헌종6년(1840) 55세 되던 해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제주도로 유배되어 헌종14년(1848년) 까지
약 9년간 이곳 대정현에 머물렀다.
유배 초기에는 포교 송계순의 집에 머물다가 몇년 뒤
유배지였던 강도순의 집으로 옮겨왔다.
강도순의 집에서 살면서 제주 지방 유생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쳤으며
제주 지역의 학문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차를 매우 좋아한 김정희는 다도 대가인 초의선사와
평생 우정을 나누었으며
제주 지역에 차 문화를 도입한 선구자이기도 하였다.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에 김정희는 추사체를 완성하고
생애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세한도(국보180호)를 비롯하여 많은 서화를 남겼다.
수선화부는 총13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추사가 평소 사랑했던 꽃인
수선화에 대한 작품을 옮겨 적은 것도
제자 허련이 편각하여 탁본했다.
현재 전시 되어 있는 작품은
중국 청나라의 호경이 쓴 '수선화부' 중 일부와 함께
추사의 수선화 그림과 이에 대한 서문을 이어 붙인 것이다.
죄인이 되어 제주로, 세한의 시간
1848년(헌종14), 추사를 석방하라는
하교가 내려오면서
드디어 세한(歲寒)의 시간은 끝을 맺었다.
제주로 유배 온지 8년3개월만의 일이었다.
추사 김정희가 사랑했던 제주 수선화가
진열장에서도 예쁜 모습이었다.
감나무와 파란 하늘이
늦가을 11월 중순을 잘 말해주고 있다.
대정현성은 조선에서 제주도 3읍성( 제주,정의 대정)의 하나인
대정현에 축조된 성곽이라고 한다.
추사관과 추사 유배지 옆에 위치하고 있는 대정현성은
태종18년에 대정현감이 왜구의 침략을 막기위해 쌓아놓은 성인데
지금은 유실되거나 도로를 내면서 없어진 부분도 있지만
그 시대의 돌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대정현성의 둘레가 1,227m, 높이는 약5m의 성인데
제주 4.3 사건을 거치면서 많이 훼손되었으며
지금은 약 2m 높이의 석성이 400m 남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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