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에 참배를 한후, 그냥 집으로 발길을 돌리기에는 무언가 허전함이 있어서
낙엽이 쌓여진 숲길을 걸어서 암자로 갔다.
스님들께서 수행정진 하시는 선원과 율원이 있는 곳이라서
발걸음 소리도 나지않게 조심스럽게 걸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경내에는 가급적이면 발걸음도 하지 않았는데
이날 만큼은 아무도 없는 조용한 경내를 한바퀴 돌아보고 싶었다.
곳곳에 '참선중 조용히'라는 팻말이 있었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던 암자 취운암이다.
취운암은 통도사 산내암자 '보타암'을 지나 200m 정도 되는 거리에
암자라고 하기에는 웅장한 건물들이 숲속에 들어앉아 있다.
1644년(인조22년) 우운당 진희대사가 통도사 본사의 대웅전을 중건하였고
6년 뒤인 1650년(효종3년)에 취운암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후 1795년(정조19년) 낙운당 지일대사가 중건하고, 1969년 승려 태일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다른곳에는 이미 단풍이 떨어져서 휑한 풍경들인데, 취운암 주변에는 붉은 단풍나무가 많아서인지
제법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취운암 강당 건물 앞의 너른 마당도 깊은 가을이 내려앉아서 더욱 고즈넉하게 보였다.
봄 부터 초가을 까지는 온갖 꽃으로 감탄할 만큼의 예쁜 마당가였는데....
겨울이 다가오는 가을의 끝자락은 모든 것들을 쓸쓸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참선中 조용히....라는 팻말이 자꾸만 눈에 띄어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입속으로 되뇌이며, 마당가 꽃밭 주변을 서성였다.
낙엽만 가득 쌓인 꽃밭에는 그많던 꽃들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담장가에는 여전히 국화꽃은 많았다.
그러나 늦가을의 찬기운이 견디지 못하게 한듯... 그리 예쁜 모습은 아니었다.
사색하기 좋은 암자로 가는 길이다.
통도사 경내에서 취운암으로 가는 숲길은 계곡이 있어서 좋았고
숲이 울창해서 아직도 매미소리가 들리는듯...여름날의 숲속을 생각나게 했다.
낙엽 밟는 소리가 좋으냐' 라는 어느시인의 싯귀가 생각났지만....
이곳의 낙엽은 모두 계곡으로 떨어져서,
낙엽 밟는 소리보다는, 계곡물에 둥둥 떠다니는 낙엽들을 바라보는 것이 운치가 있었다.
멋진 숲길에서 혼자 걷는 뒷모습도 예뻐보일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앞서 가는 어느 보살님의 뒷모습이 참으로 예뻐 보였기 때문이다.
통도사 일주문 앞에서 다리를 건너, 스님들의 요사채를 지나면, 취운암으로 가는 숲길이 나온다.
자동차가 다니는 차도가 아닌, 호젓한 숲길이다.
아마도 다음달 음력 초하루에 갔을때는 이런 모습은 흔적 간곳없이
애기동백꽃이 겨울 동장군을 만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통도사 산내암자 중에서 취운암 가는 길에서 바라본,올해의 마지막 단풍인 것 같아서 더욱 멋져보였다.
통도사에 가면 으례히 습관처럼 걸었던, 고즈넉한 숲길에 깊은 가을이 내려앉았다.
겨울의 초입이라는 것에도 주눅이 들지않는...
멋진 풍경에 매료되어 아무도 걷지않아서, 더욱 쓸쓸해진 길을 혼자서 걸어보았다.
늦가을의 정취라는 것을 암자가 있는 숲길에서 맘껏 느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