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산8번지에 위치한 '세종대왕자태실'은 세종대왕의 19명 왕자의
태를 봉안한 곳이다.
왕실에서는 아이가 새로 태어나면 전국의 길지를 골라 태실을 만들어 태를 앉혔다고 한다.
1438년(세종20년)에서 1442년(세종24년) 사이에 조성 되었으며, 석물은 화강암을 사용하였다.
세종대왕자태실은 2003년3월6일에 사적제444호로 지정되었다.
세종대왕자 태실 가는 길은 솔잎 향기가 짙은 얕으막한 야산을 올라가야 했다.
세종대왕자태실(국가지정 사적 제444호)
태실의 전체 면적은 5,950제곱미터
19기중 14기는 조성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한 다섯왕자의 태실은 사각형의 기단석을 제외한 석물은 파괴되었다.
수양대군(세조)의 즉위에 반대한 다섯왕자의 태실의 경우
사각형의 기단석을 제외한 석물과 비가 파괴되어 없어진 것이 참으로 보기 흉했다.
세조의 즉위에 반대해서 비가 없어진 다섯왕자는
금성대군, 안평대군, 영풍군, 한남군, 화의군.....
이 태실은 선석산 아래 위치한 이곳 태봉(해발 258,2m)의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종대왕의 장자 문종을 제외한 모든 왕자의 태실과 단종이 원손으로 있을 때 조성한 태실들은
모두 19기가 군립하고 있었다.
원손(단종)태실 1441년(세종23년) 윤11월26일 장태
안평대군 태실
전체19기중 14기는 조성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수양대군(세조)의 즉위에 반대한 다섯왕자의 태실의 경우 사각형의 기단석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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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대왕(수양대군 )태실 앞쪽에는 왕위에 즉위한 이후 임금의 태실인 태봉으로 봉하고
세운 가봉비를 세워 두었다.
각 태실의 앞에 새워둔 태실비에는 전면에
ㅇㅇ (大君名胎葬) 우측 , 皇名正統 ㅇ년 ㅇ월 ㅇ일 立石 좌측)의 명문을 세로 2줄로
각자(刻字)하여 태실의 주인공을 확인 할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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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 의하면 김유신의 장태 기록에 태를 봉안한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 후 고려 왕실에서 태 봉안 양식이 확립된 후 조선시대에 까지 그 맥락이 이어진
오랜 전통을 가진 것으로 태봉에 태를 봉안하고, 석물을 조성하는 태실(장태)문화는
오리나라에만 행해졌던 독특하고 독자적인 문화라고 했다.
세종대왕자 태실은 우리나라에서 왕자태실이 군집을 이룬 유일한 곳으로서
조선시대 태실의 초기 형태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뿐만 아니라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교체와 함께 나타난 왕실의 태실 조성 방식의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라고 한다.
태실을 내려오면서 바라보이는 경북 성주 월항면의 선석산 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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