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김장하는 날에

nami2 2022. 12. 20. 22:28

생각보다 훨씬 날씨는 춥고,컨디션은 엉망이었다.
그래도 텃밭에서 키운 배추 뽑아서 어렵게 집으로 운반한 후

몸살을 앓느라  6일동안 베란다에 방치시켜 놓은 배추였기에
자꾸만 시간을 그냥 보낼수 없어서 김치를 담그기로 했다.
그러나 몸의 컨디션이 안좋을때

김장이라는 큰 일거리는 엄청 많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래도 해야지
어떻게 키운 배추인데...
김치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중얼거리며 고민을 했다.

머리속은 갈등을 느끼면서  손에는 이미  칼자루를 들은채  

배추 자르기를 시도하려는 것에 내 자신이 밉다는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배추가 크고  단단하다는 것이 또 불만이었다
그러잖아도 평소에 많이 아픈 손목인데
왜 이렇게 배추 농사가 잘 된 것인지, 갈등이 또 생겼다.
이럴줄 알았으면, 20포기만 심어서 중간 크기로 키울 것을...

영양제, 칼슘제를 주고

가을 가뭄에도 물퍼다 주는 것을 철저하게 했음이 후회되었다. 

 

아픈 손목으로 배추 자르기는 진짜 큰 고통이었다.
농사가  잘 된 것을 자꾸만 후회하면서
어쩔수 없이 김치 담그기를 시작했다.

배추는 칼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 속이 꽉 찼다.
이렇게 크고 단단한 배추가 21통이고
그보다 좀 작은 중간 크기의 배추는 10통이었다.
힘들여 농사를 지은 것이기에 포기 할 수도 없고...
세상에 이런 고민도 하는구나" 생각하니 쓴웃음이 나왔다.

화분들이 가득한 좁은 베란다에서 배추 자르고
저쪽 베란다에서 소금에 절여야 하고...
김장 할 때면 늘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엄청 부러웠다.

 

아파트에서 김장하기는

절임배추 주문해서 김치 담그는 것이 딱이지만

팔자가 그런 것을 이제와서 어떡하라구

텃밭농사에서 누구 보다 더 농사 잘 짓고 싶은 욕심

그것이 진짜 사서 고생이었다.

 

소금에 절여 놓으니  하품이 나올정도로  기가 막혔다.

솔직히  베추가 너무 크고  많았다.
배추농사 잘 된 것도 꽤 부담스러웠음을 혼자 넋두리 해봤다.

배추잎이 부드러워서 삶아놨다.

들기름에 된장넣고 조물조물 무쳐서 

굵은 멸치 넣고 푹 지져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배추 절인후 12시간이 훨씬 지났기에 
이른 새벽 5시에 배추를 씻었다.

씻으면서 배추잎을 먹어보니 적당하게 잘 절여졌다.
혼자서 하루 꼬박 일을 하려면 이른 새벽 부터 설쳐야 했다.

씻어놓은 배추는 감당이 안될 만큼 많았다.

베란다에도 한무더기, 그리고 이만큼...
아는 사람이 있으면

절여서 씻어놓은 배추를 그냥 가져 가라고 하겠지만
내가 아는 지인들은
모두들 텃밭농사 짓는 사람들이라서 집집마다 배추가 넘쳐났다.

해마다 중간 크기의  배추농사를 20포기 정도 지어서
재미삼아 쉬엄쉬엄 김치도 담갔는데
올해는 양념 하는 것도 중노동이 되었다.

 

일단 김치 담그기에서 가장 힘든 일이었던
배추 자르고, 소금에 절여서 씻어놨으니까
그 다음은 알아서 할 일이지만
그래도 배추속을  넣을 것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배추속을 넣기 위해서

아침 시장에 나가서  싱싱한 굴을 사왔다.

텃밭에서 농사 지은 '쪽파, 무우,당근, 붉은갓'을  준비했는데

시장에서 사온 것은 굴과 미나리였다.

 

시간과의 싸움은 뒷전이고
오늘 밤 12시 까지 하면 되겠지
여유를 가지고 김치를 담기로 했다.

서울  여동생 집으로 가는 택배상자 2개
그리고 이만큼 김치를 담갔는데
김치 먹을 사람은 나혼자라는 것이고
냉장고에 들어가는 것도 고민이 되었다.

갓김치, 알타리김치 , 석박지 ,동치미
김치냉장고는 지금도 포화 상태인데...
또 머릿속은 엉뚱한 고민으로 골치가 아팠다.
텃밭에서 배추 농사 잘 지은 것도 이리 큰 고민이 되는 것인지
그냥 할말이 없어졌다.

원래 김치 담그는 날은 이런 김치도 담그게 된다.
배추를  쭉쭉 찢어서

굴,미나리, 갓, 쪽파,당근, 통깨를 넣고 버무려서
수육 삶은 것을 곁들여 먹는 것이 별미인데
컨디션 탓인지  
김치를 모두 담그고 나니까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점심도 거른채 빵 한조각 먹은 것이  체한듯...
혼자서 수육 먹는 것은 맛이 없을 것 같아서  
사다놓은 삼겹살도 냉장고에서 꺼내지 못한채
흑임자 깨죽 사놓은 것  한그릇 먹고, 김장하는 날을 자축했다.

맛있게 담근 김치 맛도 못본채, 배가 너무 아팠던
참 씁쓸하고 즐겁지 않은, 김장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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