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해안길 풍경
날짜는 10월 중순인데
9월 초순 처럼 날씨가 더워서 얇은 옷을 입고 일 하러 갔다가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너무 추워서 날벼락을 맞았다면 믿기지 않을 것이지만, 진짜 그랬다.
평소에 더위는 잘 견디는데, 추위는 감당을 못하는 체질이라서 한마디로 추워서 죽을뻔 했다.
세상은 하루 하루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많아지는 요지경속 같다는 것이 나혼자 생각은 분명 아닐것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서울도 그랬고, 강원도에도 그럴수 있었고, 중부지방에도 그럴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이곳 동해 남부 해안가 10월 중순의 아침기온이 5도였다.
아침 일찍 읍내 시장에 볼일이 있어서 나갔더니 모두들 겨울옷 차림이었다.
혹시 텃밭의 채소들이 냉해를 입지 않았을까 점검 나갔더니, 영하의 날씨가 아니었기에 채소들은 씩씩해 보였다.
반팔 옷이 갑자기 겨울 패딩으로 바뀐 모습들에서 그냥 쓴웃음이 나올뿐, 세상은 여전히 변함 없는듯 했다.
해안가 갯바위 위에 해국이 예쁘게 피기 시작했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더욱 청초하게 꽃이 피는 국화 종류들이 점점 화사해져 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바닷물의 색깔은 검푸른 색깔이 된다.
겨울바다로 변해가고 있다는것이 신기했다.
해안가에 오래 살다보니 ,날씨가 추워졌다는 것을, 바닷물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본격적인 해국의 시간들이 찾아온듯, 바닷가 언덕이나 갯바위에도 온통 해국뿐이다.
어찌 그리 계절의 변화를 잘 아는 것인지?
늦은 오후, 파도가 치는 해안가 갯바위 위에 올라가봤다.
파도가 치는 갯바위를 이리저리 곡예를 하듯, 엉금엉금 기어 올라갔다가 껑충 뛰어 내리기도 하고
파도를 피해서 도망치기도 하고, 발을 헛디디면 바다로 빠질 위험도 있었지만
혼자서 노는 재미가 괜찮았다.
마음이 꿀꿀할때는 가끔 이런 미친짓을 하고 나면 기분이 정상으로 돌아올때도 있는데
갯바위로 올라가서 돌아다닌 이유는 해국을 찾아나선 것이 첫번째 이유였다.
높은 암벽위에 해국이 예쁘게 피고 있었다.
다닥다닥 해국은 예쁘게 많이 피어 있었지만, 내가 손을 뻗칠수 있는 여력은 겨우 꽃한송이였다.
이런 갯바위 위에서 어떻게 꽃이 피는 것인지?
봄날에 '땅찔레꽃'도 그랬고, 여름날에 '나리꽃'도 그랬으며
가을날의 '해국'도 여전히 갯바위 위에서 꽃이 핀다.
어스름 해가 지고 있는 해안가는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쓸쓸해 보였다.
강아지풀 보다 조금 더 강하게 생겨먹은 '수크렁'의 억센 모습이 그런대로 봐줄만 했다.
차겁게 느껴지는 바다가, 겨울바다 처럼 추워보이는 오후였다.
알바하는 곳의 마당 끝이 바다라는 것이 어느때는 낭만적일 때가 있다.
일이 없을때는 그냥 마당 끝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괜찮았다.
해안가 언덕 위에 '쑥부쟁이' 꽃이 제법 많이 피었다.
날씨가 추울때는 따끈한 국화차를 자주 마신다.
국화차를 마시면서 마당가를 서성였더니
국화차를 만들 수 있는 감국꽃이 뜰앞에 제법 예쁘게 피었다는 것이 반가웠다.
날씨가 추우니까 국화향이 더욱 진하게 다가왔다.
주말 이틀동안 일을 하면서
토요일에는 초가을 옷차림이었고, 일요일에는 초겨울 옷차림이었다.
하루 사이에 계절이 껑충 뛰어서 겨울로 가고 있다는 것이 아리송이었다.
추워진 늦은 오후에 해안가를 걸어나오면서, 바다위에 떠있는 달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데 손이 시려웠다.
10월 중순에 손이 시렵다는 느낌은....
내일 모레가 음력 보름이란는 것을 바다위 하늘에서 달님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해가 점점 짧아지는 가을날 오후....
일을 끝내고 ,마을버스를 타러 가는 길은 늘 쓸쓸했다.
마음이 쓸쓸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풍경이 쓸쓸하니까, 덩달아 마음이 그런 것 같았다.
어둠이 내려앉는 쓸쓸한 포구에 가로등 불빛이 켜지면서 ,아무도 없는 마을버스 승강장에 혼자 서서
버스가 올때까지 바라봐야 하는, 포구의 불빛속에는 말로 표현이 안되는 외로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