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먹는 날
날씨는 계속해서 추웠다.
삼한사온이라는 말도 옛말인듯, 벌써 열흘째 정신 못차릴 만큼 춥다는 것은 마음이 춥기 때문에
더욱 춥다는 것을 느끼는 것인지는 모르나 코로나의 극성은 날이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는 것 같다.
차일피일, 하는 것도 없이 시간만 보내다가 보니, 어느새 날짜는 한해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겨울에도 별로 추운줄 모르는 이곳 동해남부 해안가 지방에도 매서운 추위가 계속 되다보니
애기동백꽃도 모두 얼어서 초췌한 모습이고, 텃밭의 채소들도 엉망이 되었다.
겨울이라고 해서 걷기운동을 미룰수는 없고, 밖으로 나가봐도 눈에 띄는 풍경들은 삭막함뿐이라서인지
걷는 것도 지루하고, 만보 걸음수를 채우는 것에도 자꾸만 잔꾀를 부리게 된다.
어쩌다가 눈에 띈 산비탈 나무 숲에서 빨간 청미래덩굴 열매를 발견해보고는, 반가워서 사진 부터 찍게되는
진짜 재미없는 추운 겨울날이다.
애기동지라고 해서, 올해는 팥죽 끓여먹는 날이 아니라고들 하지만
애기동지, 중동지..등등 이런것 따지지 않고 그냥 팥죽을 끓이기로 했다.
군중심리.... 이런것이 이유가 되는지는 모르나
일년중에 단 하루를 팥죽 끓여 먹는 날로 정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팥죽을 좋아 하면서도 꼭 동짓날에만 팥죽을 끓이게 되는 것이 우습기도 했다.
팥죽을 좋아하면, 아무날이나 생각날 때 끓여먹어도 될것을
일년에 단한번 동짓날이 돌아올때를 기다렸다가, 꼭 팥죽을 끓인다는 것이
어쩜 게으름의 표상일지도 모르지만
어쩔수없이 동짓날에만 팥죽을 많이 끓였다가, 소분해서 냉동 보관을 해놓게 된다.
팥향기가 좋고, 팥이 유난히 맛이 있다는 것 때문에, 자꾸만 팥죽에 욕심을 내게 되는 날이
일년에 단하루 동짓날이다.
팥죽 끓이는 법도 제대로 모르면서 내나름대로 해마다 팥죽을 많이 끓이게 된다.
진짜 팥죽 잘 끓이는 사람들이 보면, 우습다고 할지는 모르나
그냥 많이 끓여놨다가 한여름에도 생각날때
냉동칸에서 꺼내 먹게 되는...그래서 팥죽귀신이 다된 것 같다.
팥죽에 새알심도 넣지않고, 불린쌀도 그리 많이 넣지 않은....
내 나름의 팥죽
따끈하게 데워서 먹을때 ,떡국용 떡을 몇개 넣는 맛이 좋아서
팥죽을 약간 묽게 끓였다.
칼국수 집에 가면, 팥칼국수를 자주 사먹게 된다.
그래서 팥물을 내놨다가 소분해서 냉동보관한 후, 팥칼국수를 먹을 예정이다.
엊그제 담근 동치미가 제법 맛이들었다.
동치미를 담그는 이유의 첫번째가 팥죽을 먹을 때이고
두번째는 찐고구마 먹을 때이며
세번째는 누룽지 끓여먹을 때인데
팥죽을 먹으면서 먹는 동치미 맛은....일품이었다.
우여곡절이라고 할까
생각치도 않았던 질병에게 발목을 잡혀서 포로가 되고
모든 일상이 엉망이 되어버렸던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어느새 24절기 중 스물 두번째 절기인 동지(冬至)......
일년중 밤이 기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라고 하는데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엄동설한이라는 겨울이 되지 않을까 괜한 걱정을 해본다.
코로나로 인해서 마음이 추우니까 몸도 훨씬 더 춥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나날들이
부디 한해의 마무리 되는 시점에서 코로나도 그만 떠나줬으면 하는 바램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