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좋은 겨울날
주변을 둘러보니 가을의 흔적이 약속이라도 한듯 ,하나 둘씩 사라져가고 있었다.
아직은 남아 있는 텃밭의 배추들을 빼놓고는, 거의 겨울 분위기로 간다는 것이 삭막하기만 했다.
아파트 화단 옆에 서있는 단풍나무가 올해의 마지막 단풍인듯, 다가가서 사진을 찍어보려니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낮은 곳보다는 ,높은 곳에서 사진을 찍어야만 어울리는 풍경!
아침마다 창문을 내다보며 눈인사를 하게 된다.
혹여 밤사이에 거센 바람이 불어서 노란 모과가 떨어지지 않았을까?
아파트 뒷곁에 산이 가로막혀 있지만, 그 산너머에는 바로 바다가 있다.
바다바람과 산바람이 어울어져서 일년내내 바람에 시달려야 하는 이곳 아파트는
바람 때문에 알게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곳이지만, 그래도 여름에는 에어컨이 필요없다는 장점도 있고
무엇을 말리면, 바람에 의해서 잘 마른다는 것이 좋은점이다.
텃밭에서 무우를 뽑다보니 무청이 너무 좋아서 내다버리기가 아까웠다.
시래기를 엮어서 말리려고, 밭 주변에 널어놓는 사람도 있지만
무우시래기는 삶아서 햇볕에 말리는 것이 나물로 먹기에는 부드러운 것 같아서 삶아서 말려보기로 했다.
주택에 살고 있다면, 시래기 말리는 것쯤은 간단한 것이지만, 아파트에서는 그리 쉬운것만은 아니다.
베란다 밖, 작은 선반 위에 채반을 놓고 말리다보니, 새가 날아와서 쪼아먹기도 하고, 똥도 싸놓기도 하는데
그래도 이렇게나마 무청 시래기를 만든다는 것은 햇빛과 바람이 도와주기 때문이다.
바싹 마른 시래기가 생각보다 제법 많았다.
시래기국을 끓여 먹어도 맛있겠지만, 주로 나물을 해먹게 된다.
무청 시래기는 비타민과 미네랄, 식이섬유가 들어 있어서 몸에 좋다고 한다.
또한 칼슘이 함유 되어 있어 뼈를 튼튼하게 해주고, 골다공증을 예방 한다고 했으며
풍부한 베타카로틴 및 식이섬유가 콜레스테롤의 흡수를 억제 시키고
혈관 내 노폐물 배출을 원활하게 해준다고 한다.
텃밭에 심어 놓은 무우 농사가 생각보다 잘 되었다.
깍뚜기도 담그고, 동치미도 담그고, 겨울내내 먹을 저장용 무우도 제법 많기에
무말랭이를 하기위해 무우를 썰어 널어놨다.
햇볕 잘드는 툇마루 한켠에 무말랭이를 썰어서 널어 놓았던 예전의 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시절에는 도시락반찬으로 무말랭이만한 것이 없어서 해마다 무말랭이를 많이 해놓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의 아파트에서 무말랭이 만드는 것도 한계가 있었지만
그래도 남들 하는 것은 다해보고 싶었다.
바람이 심해서 채반을 그냥 널어놓으면, 채반째 몽땅 날아가버리기에
난간에 끈으로 단단이 묶어서 무우를 말리는 중인데, 새가 날아와서 자꾸만 놀다 가는 것 같았다.
참새도 날아오고, 박새도 날아오고, 그러면서 똥을 싸놓고 가는 이유는....
참새와 박새는 아주 작은 새들이다.
그녀석들이 무말랭이를 먹겠다고 6층 까지 날아든다는 것이 우습기도 했다.
똥만 싸지 않으면 좋겠는데, 새똥 때문에 어느정도 마르면 베란다 안으로 들여놓게 된다.
지인의 고추 밭에서 서리맞았는데도, 멀쩡한 고추가 있어서 따다가
밀가루 묻힌후, 찜기에 쪄서 말리는 중이다.
남들이 하니까 그냥 재미삼아서 해보는데, 말린 고추가 맵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손질 생선을 선물 받았는데, 너무 무른것 같아서 구워먹을 수가 없었다.
버리기에는 아깝고, 그냥 먹기에는 맛이 없어서 부담스럽고
그래서 햇볕에서 말려보려고 베란다 밖의 작은 선반위에 널어놓았더니....
이 겨울에 난데없는 똥파리가 날아왔다.
6층 꼭대기에 생선을 널어놓은 것을 어찌 알았는지
엄지 손톱만한 똥파리가 윙윙거려서 망을 씌웠다.
손질된 갈치와 '박대'라는 생선인데
바닷가 어시장에 싱싱한 생선이 충분하건만...
선물로 보내온 손질된 생선은 이곳 동해남부 해안가에서는 구경할수 없는 생선이었다.
겨울바람은 차거웠지만, 생선 말리기에는 적합한 날씨라서 맘놓고 널어놨는데
새들도 그렇고, 똥파리도 그렇고...
6층 베란다 밖 난간 까지 날아오는 녀석들이 기가막힐 만큼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먹기좋게 잘 말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물렁거리는 손질된 생선을 구워먹으려니까 모두 부서지고, 조림을 하려니까 역시 맛이 없었다.
꾸덕꾸덕 잘 마른 생선을 팬에 구었더니, 왜 진작 말리지 않았을까 아쉬웠다.
해풍에 말리는 생선도 맛있지만
해풍이 아니더라도 겨울철에 햇볕에 말려먹는 생선은 콤콤한 냄새가 나지 않아서 좋은 것 같았다.
텃밭에 민들레가 제법 자라고 있었다.
이른 봄날의 기후와 초겨울의 기후가 같은 것인가 할 정도로 봄꽃이 제법 피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여지는 바깥풍경은 삭막한 겨울풍경이 되었지만 날씨는 아직도 늦가을인듯...
기후조건이 봄날과 비슷했던지, 자꾸만 봄꽃이 피어나고 있다.
애기동백꽃은 겨울꽃이라고 했지만, 그외에 민들레, 냉이꽃, 씀바귀...등등
3월에 피는 노란꽃이 제법 피어나는 햇볕 좋은 겨울날에
그냥 심심해서 이것 저것 겨울 반찬거리를 말려보았더니 그나름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