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보라빛의 오동나무꽃
얕으막한 산이 이쪽저쪽으로 둘러쌓인 곳에 텃밭이 있다보니
따끈따끈한 초여름의 날씨라는 것을 알면서도, 숲에서 부는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서
한낮에는 거의 대부분을 텃밭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점점 더 크게 들리는 뻐꾸기 녀석의 구슬프게 우는 소리가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뻐꾸기 우는 소리가, 5월그리고 넝쿨장미와 아까시꽃과 하얀 찔레꽃을 돋보이게 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짙은 아까시꽃 향기와 약간은 매콤한듯, 달착지근한 찔레꽃 향기도 한몫을 하는 요즘은
점점 무성해지는 숲길에서 약간은 무서움이 도사리고 있는것 같아서 주춤하면서도
마법의 소리마냥 이끌려들어가는듯한 ,뻐꾸기 소리에 용기를 내어 숲 산책길을 자주 걷게 된다.
25년쯤 되었던 늦은 봄날에
친구같은 동생의 부친상을 당해서 문상을 가는 길이었다.
죽음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슬프게 받아 들였을 무렵
순천이라는 낯선 곳을 찾아가는 버스안에서 바라본 창너머의 보라빛 꽃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부산에서 순천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보았던 보라빛 꽃이 왜 그렇게 많이 피었던 것인지
문상을 가는 착잡한 마음에 보라빛 꽃이라는 것이 어느새 가슴 깊이 들어와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슬픈 보랏빛의 꽃....
그것이 나중에 알게된 '오동나무'꽃이었다.
오동나무꽃
옛말에 "봉황새"는 대나무 열매만 먹고, 집은 오동나무에만 짓는다고 할 만큼
귀하게 여기던 나무가 오동나무라고 한다.
또한, 예전에는 딸을 낳으면
집 마당에 오동나무를 심어서 그 딸이 결혼할때 오동나무로 장농을 만들어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만큼 오동나무는 행운 전해주는 상서로운 나무라고 여겼다고 한다.
나무가 너무 높아서 가까이에서 꽃을 찍는 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예쁘게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오동나무꽃은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라는 노랫말이 생각날 만큼
높은 나무에 핀 꽃이 야속하기만 했다.
산등성이에 핀 오동나무꽃을 줌인하여 찍어보았다.
눈에 띄는 오동나무꽃은 제법 보였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너무 먼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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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안으로 바라보듯, 먼곳에 있는 오동나무꽃을 직접 찾아 가기로 했다.
멀리서 애타게 바라볼것이 아니라
가급적이면 한발자국 더 가까운곳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기에
나무가 있는 곳 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 였지만 ,걷기로 했다.
누가 보면, 할일도 어지간히 없나보라고 핀잔을 줄것이지만, 운동삼아 걷는 것이니까....
가까이에서 바라본 오동나무였지만, 나무도 너무 높았고
주변은 풀이 무성한 숲 한가운데 있었기에 ,역시 사진을 잘찍기에는 무언가 부족했다.
오동나무의 꽃말은 '고상하다' 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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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나무는 쌍떡잎식물이 낙엽활엽교목이고,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오동나무의 원산지는 중국이며,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관상수로 심어져 있다고 한다.
하루종일 오동나무꽃을 찾으러 다니는 날로 정해보았다.
집 주변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는 꽃이었기에
오동나무꽃이 피어 있는 곳만 찾으러 다니다보니, 대부분 오동나무는 산비탈이나 숲속에 있었다.
평소에도 보라색깔의 꽃을 좋아 하지만
오동나무꽃의 보랏빛은 슬픈 보랏빛이라고, 마음속에서 정해놨기 때문인지
보라색깔의 꽃을 보는 느낌과 오동나무꽃의 보랏빛 느낌은 확실하게 다른 것 같았다.
아파트 뒷숲에서는 뻐꾸기가 새벽 부터 늦은 오후까지 울어대고 있다.
햇살이 따끈따끈한 한낮에는 산꿩의 우는 소리까지 덩달아 길~게 들려온다.
얕으막한 산이지만, 아파트 사람들이 자주 오르는 산보다, 더 커보이는 아까시 나무의 꽃이
산보다 더 높은 곳에 멋지게 피어 있는, 초여름 5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