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의 소중함을 느꼈던 날들
며칠동안 죽을 만큼 다리가 아파서 고통스러워 하면서 ,여러가지 이유로 다리를 혹사시킨 것에 반성을 했다.
무리한 산행을 하고, 무리하게 절집을 드나들고, 그것도 모자라서 하루에 만보씩 강행군을 했더니
신체의 일부분인 다리가 반란을 일으켰다.
그냥 산다는 것이 이유없이 버거워서,시간이 날때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보니
다리가 늘 피곤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지만, 어느날 갑자기 나를 주저앉힐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지난 주말(17일)에 생각없이 트래킹을 하다가 허리 쯤에서 이상한 땡글림을 느꼈다.
2월에 다녀온 광주 무등산 산행이 엄청나게 무리했던 산행이었는데, 그후에도 계속해서 다리를 혹사시켰으며
텃밭의 거름포대(20키로)를 혼자 힘으로 9포대를 날랐던 것이 또 무리가 되었던 것인지
이상한 허리의 땡글림이 결국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했었다.
인대가 늘어난것도 아니고, 다리가 삔것도 아니었으며, 타박상을 입은 것도 아닌데
움직이지 못할 만큼 허리부분에서 부터 엉덩이 까지의 통증은 시간이 갈 수록 심해졌다.
엉덩이가 아프니까 누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보니 이틀동안 수면부족 상태가 되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서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다보니, 아몬드 10개로 요기를 했다.
생수병과 아몬드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아찔했다.
위급상황에서의 비상식량이었다는 것이 감사했다.
다리의 통증때문에 걸을수도 없고,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살겠다고 연명하는 방법이
아침 저녁으로 아몬드 10개와 생수 한잔이었다는 것이 참으로 서글픈 순간들이 되었다.
혼자산다는 것에대한 서글픔이 잠시잠깐 ,죄악을 만들뻔 했었다.
그만 살자는 쪽으로....
순간, 먼저 소풍 떠난 우리집 아저씨의 첫기일이 다가옴을 의식했다.
일년전에 우리집 아저씨가 다리의통증때문에 사용 했던 약들이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었다.
몹쓸병인지도 모르고 , 다리의 통증이 일시적인줄 알고 사다놓았던 약들이었지만
혹시 나에게도 같은 상황은 아닌지,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암덩어리가 다리에 전이 되었는줄 모르고 한의원에 다녔던 것도 생각났다.
한달을 다녀도 다리의 통증이 멈추질 않아서 큰 병원에 갔더니
아주 몹쓸병이 8개월만에 이세상 끝을 내게 했던 그 비통함과 힘겨웠던 시간들이었는데....
내게 고통을 주는 다리의 통증이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니까 무서워졌다.
설마.... 아닐꺼야, 설마.....아닐꺼야
무서운 생각을 뒤로하고, 집안 이곳저곳에 있는 우리집 아저씨가 사용했던 약들로 마사지를 하고
바르고 ,붙이고, 주무르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짓은 모두 해봤다.
혼자서는 파스 한장 제대로 붙일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아니, 몹쓸병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 하기위해서 힘겹게 몸에다가 덕지덕지 파스도 붙여 보았다.
이틀동안 고생했더니 걸음을 걸을 수가 있었다.
완전한 걸음은 아니지만,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약국을 갔다.
상황을 이야기 했더니 담 들린 것 같다고 했다.
먹는 약과 또 한보따리의 담파스와 그리고 식사대용을 할 수 있는 빵을 사왔다.
얼마나 절박했었는가
일본여행에서 사다놓았던 것들도 이곳 저곳에서 끄집어냈다.
내가 사다놓은 것도 있었고, 지인들이 사다준 것도 있었지만
나중에 아주 나중에, 다리의 관절에 무리가 올때 사용하려고 깊숙히 넣어 놓았던 것들인데
집안 구석 구석에서 다리에 관한 의약품들을 찾아내서 바르고, 붙이고, 주무르고 힘겨운 싸움을 했다.
다리에 무리가 온지 5일만에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었으며, 부자연스러웠지만
절룩거리면서 산책을 할 수 있었다.
그냥 신체의 한부분이라고 생각없이 혹사 시킨 다리에게 미안 하다는 생각을 했으며
혼자 사는 사람에게 다리가 얼마나 소중 한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했다.
움직일수 없어서 하루종일 끼니 때마다 아몬드 10개로 살았다는 것이 눈물겨웠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통스러워 최악을 생각해냈다는 것도 생각해보니 씁쓸했다.
오늘 4월산행 산악회 예약에 B코스를 선택했다.
다리의 소중함이 어떤 것인가, 무리한 산행인 A코스는 절대로 가지않기로 다짐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