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곡밥과 묵은나물
내일이 정월대보름인데, 하루종일 비가 내린다고 했다.
올해는 보름달 구경도 할 수 없고, 해수욕장에서 달집 태우는 행사도 구경 할 수 없을 것 같다.
예전의 정월대보름에는 이것저것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풍습이 많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부모님세대가 역사속으로 묻혀버리니까 덩달아서 시큰둥해지는 세시명절이 되는듯 했다.
음력 새해의 첫 보름날을 뜻하는 정월대보름 유래는 만사형통과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날로
전통적인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 농사의 시작일이라 여겨 매우 큰 명절이었다고 했다는데....
어찌되었건, 재래시장에서 느껴지는, 정월대보름 명절의 풍성함은 이곳이 해안가였기에 실감을 하게 되었다.
배를 타고 나가는 어부들이 있는 항구 주변은 ,생각보다 훨씬 정월대보름 행사가 큰 행사인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덩달아서 정월대보름을 그냥 넘길수가 없어서 '오곡밥과 묵은나물'로 쓸쓸함을 해소시켜 보았다.
오곡밥이라는 것은 다섯가지 곡식으로 밥을 짓는다는 뜻이겠지만
집에 있는 곡물을 있는대로 모두 넣었더니 10가지가 넘는듯 했다.
오곡밥이 목적이 아니라 맛있는 잡곡밥이 우선이니까, 그냥 내마음대로 밥을 했다.
현미,찰현미, 수수, 차조, 보리쌀,흑미,찹쌀, 멥쌀, 땅콩.팥, 옥수수, 강낭콩, 쥐눈이콩
삼국유사에 따르면 정월대보름에 오곡밥을 먹는 풍속은 신라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며
신라 소지왕이 역모를 알려준 까마귀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매년 음력1월15일에
귀한 재료를 넣은 약식을 지어 제사를 지낸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특히 정월 대보른에는 다른 성(姓)을 가진 3가구 이상의 밥을 먹어야 그해의 운이 좋다는 미신에 따라
여러가구가 서로의 오곡밥을 나눠먹기도 했다고 한다.
정월대보름 오곡밥은
보름 전날에 지어놓고, 보름날에는 9가지 나물과 함께 먹고 즐기는 조상들의 풍습이었는데
꼭 5가지 재료가 아니더라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자신이 농사 지은 곡식을 모두 골고루 넣어서
밥을 해먹기도 했다는데
이는 그 해에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세시풍습이었다고 한다.
가지 말린것을 물에 불리는중...
유난히 묵은나물을 좋아하기에, 텃밭농사를 지으면서 정월대보름날 핑계로 준비를 했었다.
5월에 죽순을 손질해서 냉동실에 보관했던 이유도 정월보름에 나물을 하기 위함이라서....
텃밭의 무청 시래기를 삶아서 햇볕에 말려놓은 것인데
하루종일 삶아서 물에 불려서 부드럽게 하느라 무척 애먹었다.
수고한 댓가로 맛있는 '무청시래기' 나물이 될 것 같았다.
텃밭 주변에서 따다가 말린 '아주까리 잎'이다.
묵은 나물 중에서 우리집 아저씨가 가장 좋아했던 나물이라서 빼놓지 않고 나물을 하게 되었다.
텃밭에서 따다가 말린 '고구마줄기'이다.
부드럽게 하기위해서 하루종일 엄청 노력을 했더니 질기지 않게 잘 되었다.
겨울을 무사히 이겨낸 텃밭의 배추를 뽑아다가 파란나물을 만들었고...
저녁시간에 특별하게 할일이 없어서 재미삼아 나물을 만들었더니 제법 맛있는 나물이 되었다.
보름에는 9가지 나물을 만든다는 풍습이 있지만
직접 말린 나물이 이것밖에 되지 않아서 6가지 나물로 끝을 냈다.
늘 혼자먹는 밥이 맛이 없어서, 저녁에는 떡국이나 면 종류를 먹었는데
오늘 저녁은 좋아하는 묵은나물 덕분에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구운 김에 밥과 나물을 싸서 간식 먹듯이 먹었더니, 색다른 별미가 되었다.
우리집 아저씨가 계셨다면, 생선도 굽고, 찌개도 끓여서 한상 가득 차렸을텐데....
오곡밥과 묵은나물을 만들어서 대충 정월대보름 음식을 흉내 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