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교룡산성 성곽의 흔적
전라북도 남원시 산곡동 16-1, 위치한 교룡산성은 남원 선국사가는 길에서 만날 수 있었다.
오래된 성곽이 능선을 따라서 길게 늘어져 있는 모습을 바라보니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낯선 곳에서 시간적인 제한이 있어서 그냥 몇장의 사진으로 미련을 떨쳐내기로 했다.
교룡산성의 둘레는 3,120m이고, 전라북도 기념물 제9호이며, 건립시기는 백제시대라고 하며
이곳에는 현재 문지(門址), 수구(水口)옹성(甕城)등의 시설이 남아 있다는 것을 검색해보았다.
또한,이 산성은 남원의 진산인 교룡산의 정상과 동쪽으로 형성된 계곡을 두른 포곡식(包曲式) 산성이다.
언제 처음 축조되었는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나라 장수 유인궤가 쌓았다고 하며, 설인귀성이라고도 한다.
또한 691년(신문왕11년)에 남원소경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삼국시대 말기에 백제가 축성하였다고
추측되기도 하나 성안에서는 오래된 유물이 채집되지 않아서 정확한 것은 알 수없다고 했다.
선국사에 갈때는 아무생각없이 지나쳤던 곳인데, 집으로 갈때는 눈여겨 보게 되었고
교룡산성의 성문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홍예문(무지개 모양의 문)
교룡산성의 동문으로 홍예(무지개 모양의 문)를 이루었으나 그 형식은
조선시대 후기의 일반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이 문은 교룡산성의 가장 중요한 통로였다고 하는 동문으로 원래 문루가 있었다고 하는데....
비석군
교룡산성을 지켰던 역대 문관, 별장들의 기적비들이라고 하는데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서인지 글씨가 희미하게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성곽을 따라서 걷고 싶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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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져가는 교룡산성의 성곽
성곽밑에서 자리를 잡은 제비꽃
교룡산성은 남원지역 20여개의 산성 중 형태가 가장 잘 보존되었 있는 성으로
백제때 신라와 대적하여 처음 쌓았다고 한다.
또한 고려말 이성계 장군이 왜구를 맞아 싸웠고, 임진왜란 당시 승장 처영이 크게 수축한 곳이다.
그리고 동학혁명때는 접주 김개남이 이끄는 농민군이 관군과 큰 접전을 벌인 역사적인 유적지이기도 하다.
교룡산성 성벽은 자연석이 아닌 잘다듬은 돌을 이용하여 견고하게 쌓았으며
동쪽 계곡부에 수구를 두고 옆에는 옹성을 갖춘 동문 터가 남았는데
이곳이 동문으로 들어가는 곳이었고, 성 안의 사찰 '용천사(지금의 선국사)'가 있는데
조선시대 후기에는 승려들을 성곽수호에 기여 하도록 하였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성(城)이란 보통 성벽을 말하는 것인데, 그 의미는 매우 넓다.
처음에는 흙을 파서 도랑을 만들거나, 흙으로 쌓았으나 사람들의 지혜가 발달되면서
나무로 만든 목책과 돌로 쌓은 석축, 벽돌로 쌓은 전축(磚築)도 생겼다.
전형적인 성곽은 네모꼴로 쌓은 성과 다시 그 바깥에 네모꼴로 쌓은 곽(郭)으로 구성되는
이중의 벽으로 구성된다고 한다.